거의 매일을 갔다고 해도 무방한 동네 카페를 가지 않은 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그곳의 매력은 다소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커피에 대한 프라이드가 넘치고, 모든 손님을 친절하게 응대하는 사장님과 그에 걸맞는 맛있는 커피였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발길을 끊게 된 건 아마 사장님이 배달을 시작한 시점부터 일 거다.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하긴 해야겠더라구요.” 커피 맛이 생명인 카페에서 배달을 시작한다는 건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라 할지라도 사장님 입장에선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배달을 시작한 이후 카페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내가 애정 하던 마카롱, 케이크와 같은 디저트는 자취를 감추었고, 카페 입구엔 손길을 기다리는 일회용품들이 정리도 안 된 채 나뒹굴었다. 거기다 배달에 운용되는 디저트를 보관하기 위해 문 앞엔 바로 큰 몸집의 냉장고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카페에 곧장 발길을 끊지 않은 건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었을뿐더러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깨지 않고 싶은 루즈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광화문 집회로 인해 코로나19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기간이었다. 나는 땅거미가 진 지 한참 뒤에 겨우 집 밖을 나서 1시간쯤 그 카페에 머물기로 했다. 평범한 여느 때처럼 따듯한 모카를 시키고 ㅡ나는 이 카페의 모카를 아주아주 좋아한다ㅡ 한창 작업에 몰두하던 그때였다. 사장님과 직원의 잡담이 두 귀를 덮고 있는 헤드셋을 비집고 조그맣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대화의 내용은 주로 사장님의 하소연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매출이 떨어졌다는 둥, 힘들다는 둥, 끝나고 맥주 한잔 하는 거 어떻냐는 둥. 친한 관계에선 흔히 들을 수 있는 아주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그런 대화였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본의 아니게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자리가 카운터랑 너무 가까웠던 탓이었을까? 요란하게 울리는 배달 콜 소리와 그들의 잡담이 콜라보가 되어 내 머릿속엔 나만의 시간(공간)이 침범당했다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가 않았다. 내가 앉아 있는 긴 테이블의 끝엔 여전히 한 다발의 일회용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곳에 발길을 끊었다. 여름의 끝자락으로부터 지금까지 가지 않았으니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 이후로 나는 버스 안에서만 종종 창밖 너머의 그 카페를 바라보곤 했다. 그 카페는 마치 나 하나쯤은 오지 않아도 아무렴 어떠냐는 듯이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내가 왜 카페에 가지 않는지 알고나 계실까? 그렇게 어제저녁, 나는 또다시 버스에 탄 채 창밖 너머로 빛이 나는 그 카페를 보았다. 새삼스러웠다. 근 몇 년간을 뻔질나게 다녔던 그곳을 이젠 눈으로만 지켜보다는 사실이. 생각해보면 그 카페가 생긴 이래 많은 것들이 바뀌어 왔다. 카페 사장님이 바뀌었고, 카페 이름이 바뀌었다. 카페 옆 가게들이 바뀌었고, 나의 상황이 바뀌었고, 심지어는 나의 꿈마저 바뀌었다. 아, 애정이란 정말 찰나의 순간이구나. 그때 느꼈다. 애정을 쏟는 기간 중에는 언제든 변하지 않을 것처럼, 언제든 옆에 있을 것처럼 아끼고 보살피기 바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쏜살같이 지나고 나면 여느 것처럼 결국엔 평범해지고 만다는 것을. 그건 공간도, 물건도, 생각도, 사람도, 사랑도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생각을 곱씹으며 별안간 조금은 낯설어진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걸음을 이어나갔다. 변하지 않았다 생각했지만, 너도 참 많이 변했구나. 그래, 어쩔 수 없는 거구나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