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다른 또래보다 조용하거나 참을성이 좋았던 사람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어른들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의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줄곧 듣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항상 나에 대한 칭찬으로 인식하곤 했다. 어른스럽다, 의젓하다 등과 같은 뉘앙스의 말들. 그 말들은 칭찬에 목마른 내게 언제나 단비 같은 존재였고, 나는 그 말들을 해준 어른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더욱더 나를 단정히 가꾸려 노력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거듭하여 되씹어보니 어쩐지 모순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른스러운 게 뭐길래? 체면을 중시하여 겸손을 떨고,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양보 혹은 희생을 하고, 싫은 일에도 무한정 참는 것이 과연 ‘어른’인가? 사회에서 정한 어른의 기준은 명확하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너무 애매모호하다. 무엇보다 이 세상엔 나이를 먹어도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난무하다. 어떨 땐 애들이 어른들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애가 한숨을 푹푹 쉬며 제 집 수도세, 전기세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그 애의 가정환경 더 나아가 그 애의 정신‧심리 상태를 걱정할 것이다. 애는 애다워야 한다. 어른에게 ‘애 같다’는 표현은 욕(질책)에 가깝지만 아이에게 ‘애 같다’는 표현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아이에게 ‘어른스럽다’와 같은 표현은 아직 좀 더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아직 좀 더 뛰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너무나 빨리 여물게 한다. 또, 그 말에 묶여 본디 애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걸 꺼려하게 만든다.
나는 부디 이 세상의 모든 아이가 자신의 나이에 맞게 성장하길 바란다. 어렸을 적부터 진 마음의 그늘은 어른이 되어도 그리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기 위해선 이 세상의 어른들이 지금부터라도 훗날 아이들이 겪을 세상을 위해 좀 더 노력해줘야겠지. 일단 나부터 열심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