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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탐험가 황다은 Jul 23. 2020

스위스 소도시 축제에 참여해보았다

내가 방문했던 스위스 작은 마을 아펜젤은 일 년에 한 번, 모든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인다. 그리고 직접 거수 투표를 진행하는 전통 행사 '란츠게마인데'가 펼쳐진다. 란츠게마인데를 자세히 다룬 내용은 전 편에.


https://brunch.co.kr/@daeunhwang/13


아펜젤의 오랜 전통


행사가 끝나고 난 뒤, 시작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또 한번의 흥겨운 행진이 시작되었다. 근엄한 표정의 꼬꼬마 

친구들이 나름 엄숙하게 행진을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역사적인 순간을 목도한 직후에 직접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멋진 검이 잘 어울리는 남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란츠게마인데는 어떤지, 실제 마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말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꼭 참여하는 행사"라며 "마을의 결속력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확실히 정치적 투표 행위를 통해 모두가 모이는 담론의 장을 형성할 수 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행사 전 행진때부터 눈에 들어오던 검이 너무 잘 어울려서 그에 대해 질문을 해봤다.  역시, 뜻깊은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다. 란츠게마인데에 참여한 남자들은 아래 사진과 같이 검을 들고 참석하는데, 이 검은 1991년까지 투표할 자격이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고. 그야말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아펜젤의 역사이자 전통인 셈이다. 아직까지도 이 검을 지닌 채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란츠게마인데에 참석하는 남자들은, 이 멋드러진 검을 지닌다


사실 아펜젤에서 여성들이 란츠게마인데에 참여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1991년(!) 이전까지는 투표권이 없다가, 투쟁 끝에 그해에 첫 투표권을 얻어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전통 행사 이면에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역사가 있을 줄이야. 1991년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이 든다.

참고로 매끈한 검 역시도 여성들에겐 주어지지 않고 작은 투표 카드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소도시 축제에 참여하다


그와 인터뷰를 마친 뒤, 행사가 끝난 뒤의 광경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작고 예쁜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광장 안에서, 거리 곳곳에서 모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평소처럼 혼자 취재하러 온 길이었다면 약간 외로웠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우연히 만난 친구들이 있기에, 행사가 끝난 뒤 기분좋은 북적북적함을 같이 즐길 수 있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의 일화는 아래 편.


https://brunch.co.kr/@daeunhwang/12


행사만 관람하고 바로 가는 건 재미가 없지. 우리도 마을 사람들의 축제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는 천막을 찾았다. 한켠에서 아펜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들은 흥겹게 먹고 마신다.



투박하게 생긴 빵 한 조각에 아펜젤 지역의 오동통한 소세지 하나를 얹은 메뉴를 안주삼아, 아펜젤 맥주를 마셔본다. 눈 덮힌 산으로 둘러싸인 예쁜 마을 아펜젤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펜젤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니,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즐겁다. 



흥겹게 축제를 마무리하고 난 뒤, 친구들과 다시 취리히행 기차를 타러 기차역에 갔다. 바로 다음 날, 학교 수업이 있는 교환학생이기에 야간 버스를 타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앞두고,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운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영국식 펍에 가서 퀴즈를 맞추고, 친구들과 버거와 맥주를 마시며 한참을 떠들었다.


스위스의 모든 마을을 순례하는 특별한 여행을 하는 친구들과,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 사진 작가인 친구, 그리고 유럽의 로컬 커뮤니티를 탐방하고 있는 나까지. 나이와 국적은 제각각이지만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탐구하고 싶은 주제로 여행을 하다가, 특별한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흔치 않은 인연과 함께 몇 백년 전통의 현장을 즐기며 역사의 일부를 즐기는 경험이 짜릿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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