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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탐험가 황다은 Jul 07. 2020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다같이 투표하는 스위스 마을

언론정보학도의 좌충우돌 취재기


가는 길에 예상치 못하게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든든한 동행도 만나고, 평화로운 아펜젤의 풍경도 너무 아름다웠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나 싶었는데... 이미 내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관광객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미리 이메일로 약속을 잡고 만났던 앞선 취재와 달리, 란츠게마인데는 많은 방송사에서 취재를 할 정도의

규모가 큰 행사이고, 어마어마한 수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점을 간과해버린 것이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일찍 온다고 온건데... 역시 전날 아펜젤에서 숙박을 했어야 했나.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이라도 최대한 자리를 잡아보는 수밖에!


광장에서 진행되는 정식 행사가 진행되기 전, 먼저 마을 주민들의 행진이 이루어진다. 투표가 이루어지는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나긴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펜젤을 나타내는 복식을 단정히 입고, 힘차고 웅장한 음악을 연주하는 행진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는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길목에 위치한 가게의 2층 창문에서 내다보기도.


큰 행사에 잔뜩 긴장한 듯한 소년의 모습


행진이 끝난 뒤, 정식 행사가 진행되는 광장으로 달려가니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황급히 카메라를 꺼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어라. 잘 안된다. 내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주민 외 사람들이 입장할 수 있는 구역은 기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게 아닌데... 기사에서 보았던 그 매끈한 그림들은 어떻게 찍는 거지? 당황스러웠다. 취재진의 거대한 카메라 장비를 보고야, 납득했다.


그 사진들은 이런 장비로 찍는 거였어


최대한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춘 채, 이리 저리 자리를 잡으려고 애쓰며 주민들을 오롯이 담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애썼다. 키가 큰 주위의 유럽인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좌충우돌 사담은 이쯤에서 줄이고, 행사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란츠게마인데란?


매해 4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거의 3천명의 마을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안건에 대해 직접 손을 올려 투표하는 직접민주주의행사다. 600년이 넘는 전통의 유일무이한 역사로, 전 세계적으로 이제 이런 행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스위스에서도 내가 방문한 아펜젤과 글라루스 마을에서만 이러한 행사를 한다고. 이 희소성 덕분에 이제는 단순한 정치적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관광적 행사로 자리매김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행사가 되었다. 새로운 콘텐츠를 억지로 만들거나 다른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모방하지 않고도, 로컬 고유의 행사를 계속 지켜 오히려 사람들을 모으는 결과가 된 셈이다.




이 시스템, 정말 괜찮나?


역사의 생생한 순간을 목도한 느낌. 정말로 광장에 모든 주민들이 나와 손을 들고 투표를 한다. 이런 방식이기 때문에 투표지에 투표를 할 때처럼 정확한 수를 집계해서 결정하지 못하고, 다수가 넘었다고 눈대중으로 세어 측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비밀 투표의 원칙은? 정확한 집계는?


이 특수한 성격의 직접 민주주의 행사가,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할 수 없고, 정확한 집계도 어려워 눈대중으로 다수결을 넘겼는지 판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찬반 의견이 갈릴 시에는 2차 거수를 실시한 뒤 정확히 집계한다고 한다.) 실제로 란츠게마인데의 이러한 부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비밀 투표와 정확성이 생명처럼 여겨지는 요즘 사회에서, 란츠게마인데의 전통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을 지킨다는 점에서, 그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내지 못할 유일무이한 관광 이벤트가 되었다. 실제로 내가 행사의 취재를 마치고 잠시 마을 주변을 탐색하고 있을 때, 익숙한 한국어가 들리더라. 고개를 돌려보니 유럽 여행을 하며 가끔 마주치는 중년의 한국인 관광객 분들이 계셨다. 런던, 파리같은 유명한 여행지가 아닌 이 작은 마을 아펜젤에서 익숙한 한국어를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같은 자유여행자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의 단체 여행객들도 이 곳을 방문하며 행사를 둘러보고 있더라. 후에 확인해 보니, 스위스관광청에서도 란츠게마인데를 다루고 있었다.



확실히 새하얀 눈이 소복히 내려앉은 푸르른 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동화같은 마을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아름다웠다. 역사의 한 순간을 목도하는 느낌. 단순히 과거의 것을 재현하는 행사가 아니라, 지금도 그 것이 실제로 주민들의 삶에 반영되는 자연스러운 행사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 트렌드와 전혀 반대되는 전통이라는 점에서 아펜젤은 그만의 매력을 갖추게 됐다.


실제 행사의 진행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아펜젤 란츠게마인데의 정수는 개인적으로 행사가 끝난 뒤라고 생각한다. 스위스 작은 마을의 전통 행사의 뒷풀이에 같이 참여하며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던 경험은,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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