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건물주가 되어야 하나봐요(?)
오늘의 여행지 런던 햄프스테드는 런던 여행에서 가봐야할 top10에 흔히 올라가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 그 어떤 런던 로컬보다도 더 매력적인 곳이다. 키츠같은 예술가들이 살았던 동네이며, 매력적인 빈티지 숍과 우아한 주택가가 즐비한 부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손흥민이 집을 산 동네로 큰 화제가 되었기도. 10만여평의 녹지, 햄프스테드 히스가 자리잡아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도 있다.
자 그럼 내가 왜 부촌 햄프스테드를 '유럽 로컬 인터뷰 여행'의 목적지로 삼았을까? 보통 낙후된 도시에서 이런 로컬을 위한 움직임이 더 활발하지 않을까? 우아한 동네 햄프스테드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가 햄프스테드를 방문한 이유는, 이런 부촌에 주민들이 만든 '커뮤니티 센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센터보다는 그사세가 펼쳐질 것 같은 동네였기 때문.
커뮤니티 담당자 엠마에게 이메일로 약속을 보내고, 수월하게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마침 런던은 내가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던 프랑스 북부 도시 릴과 아주 가까웠기에, 런던 여행 중 약속을 잡았다.
런던 관광지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적한 마을에서 내린 뒤, 약속장소인 햄프스테드 커뮤니티 센터까지 걷는 길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뭐랄까, 런던 관광지에서 걷는 거리가 화려하게 내 눈길을 사로잡는 이벤트라면 햄프스테드는 잔잔한 여유를 주는 연주회같달까. 그렇게 도착한 자그마한 센터 옆에는 햄프스테드 커뮤니티 마켓이라는 간판 아래 식료품 가게와 꽃집이 있었다. 센터의 1층은 마침 아이들의 방과후 학교를 진행중이었고, 안내를 받아 2층에 있는 엠마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엠마는 차를 권하며, 커뮤니티 센터의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책자를 건네 주었다. 아래층에서 아이들이 방과후 수업을 듣고 있어 그 모습을 견학시켜 주고 싶지만, 수업 중이라 어렵다는 양해를 덧붙인 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엠마는 햄프스테드 커뮤니티 센터의 시초를 이야기하기시작했다. 엠마의 남편은 이곳, 햄프스테드에서 자랐다. 그녀의 남편이 태어나던 당시만 해도 햄프스테드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유명 시인 키츠의 고향답게 작가, 배우 등 예술가들이 많은 동네였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몇몇 집들은 32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까지 치솟기도 하는 등 변화가 심각해지자 그들은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자 머릿속에서 우리나라의 몇몇 골목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여기까지는 아주 흔한 이야기였다.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건물을 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며 햄프스테드는 전환을 맞이했다. 1976년 엠마의 시어머니가 지역 예술가들과 합심하여 건물을 사들인 뒤, 지역 마켓을 운영하며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변화하는 햄프스테드에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아 마켓을 더욱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아직까지도 이어지며, 젠트리피케이션을 완벽하게 막진 못했더라도(지금 햄프스테드는 과거와 달리 부자 동네로 인식된다) 최소한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엠마는 햄프스테드의 집값 상승으로 인해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당장 센터 반대편 거리만 보아도 월세 인상으로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센터에서 산 건물을 본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임대해주고 있어요. 지역에서 하는 햄프스테드 마켓이라는 인식 덕분에 주민 역시도 활발히 방문하고요."
그리고 사무실 위층에도 공간이 있어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임대해준다고. 가격은 한 시간당 15파운드인데, 햄프스테드의 다른 대부분 공간들은 시간당 30-50파운드 정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센터는 '공동체 정신'으로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해당 임대로 경제적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로컬에서 일을 벌이기 위해서 건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꼭 커뮤니티 센터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창업가들이 가게를 열어 사람들을 지역에 불러 모으다가 임대료 상승으로 떠나게 된 일. 지역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텅텅 빈 임대료 공실, 휑한 거리뿐이지 않았는가.
우리나라 로컬의 사례도 떠올랐다. 목포의 괜찮아마을을 시작할 때 유휴공간을 자원으로 확보할 수 있어 청년들에게 꾸준히 좋은 콘텐츠와 마을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가진 창업가가 있어도 건물주의 의사에 따라 지역을 지탱하던 매력들이 사라지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어야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햄프스테드 커뮤니티 센터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빈부격차가 심한 마을 특성에 맞게 낮은 금액으로(엠마는 자신있게 가장 싼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방과후 수업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햄프스테드는 깔끔하고 세련된 동네 특성에 부합하듯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들 대부분은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진학시킨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커뮤니티 센터는 방과후 학교를 제공하고 있었다.
또한 60대 이상 노인들의 모임을 주최하며 노년층을 위한 커뮤니티 빌딩에도 힘쓰고 있다. 바캉스 시즌에는 노년층을 위해 해변으로 저렴한 가격의 단체 여행을 기획하기도 한다고. 토요일엔 카페를 열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주민들끼리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햄프스테드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카페 한 번 가기도 참 부담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다시 '공동체 정신'으로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커뮤니티 센터에서 카페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는 우리나라 로컬 월곶 빌드가 떠올랐다. 월곶의 빌드는 지역의 특성에 맞게 아이가 있는 어머니를 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월곶 일대를 살기 좋게 변모시킨 지역 혁신가다. 우리 지역에 어떤 사람이 거주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여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의 중요성을 햄프스테드와 월곶에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