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탐험가 황다은 Apr 29. 2020

암스테르담, 내 집 안에 극장이 있다면?

요한 씨는 본인의 집을 비롯한 코하우징의 전반적인 시설들을 설명해 준 뒤, 나에게 특별한 공간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어떤 시설이 남은 걸까 궁금증을 안고 도착한 곳은, 바로 '극장'이었다. 


50여 가구가 입주한 소규모 공간에서, 극장까지 만들었다니. 더군다나 암스테르담 시내까지 트램 한 번으로 갈 수 있다고는 하나 코하우징 Vrijburcgt이 위치한 곳은 암스테르담의 정중앙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주위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가들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감각적인 건물들뿐. 일반적으로 극장이 있을 것 같은 위치는 아니었다.


극장의 입구


"마음 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인 '극장'이, 내 집 안에 있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극장 프로그램의 포스터


내가 어떻게 코하우징에 극장을 만들 생각을 했냐고 묻자, 요한 씨는 코하우징의 초반 무렵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하우징 초창기 멤버 중에는 배우들도 있었어요. 그 배우들이 코하우징에서 연기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어했고요. 그러다가 결국 공용 공간에 극장을 포함시키자는 논의로 확장된 거예요."


그럼 계속 그 배우들이 이 극장에서 연기를 하고 있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코하우징의 건설 계획 단계에서 실현에 이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못 버티고 나갔어요. 배우들도 나갔고요. 하지만 다행히 공연계에 인맥이 넓은 거주민이 있어서, 그들의 지원과 코하우징 내 자원봉사자 등을 토대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죠."


의장, 비서, 회계, 기술, 프로그램 관리 등 세분화된 영역을 담당한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극장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고.



전문적인 조명, 무대 장비를 갖춘 극장 내부


코하우징의 흥미로운 거주 실험


극장에서는 연극이나 코미디 쇼같은 공연 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회, 요가 클래스, 워크샵, 강연, 예술 클래스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역시 선보이고 있었다. 코하우징 입주민이 아닌 외부인 역시도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 가능하다.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극장 재단이 13년 이상이나 성공적으로 지속되어, 이제는 꽤나 유명한 극장이 되었다. 단순히 지역 소규모 행사가 아니라, 네덜란드 유명 코미디언도 공연을 하러 올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곳이 유명해지자 예술가와 거주 공간을 결합한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예술가가 1달 동안 Vrijburcht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주고, 그 답례로 예술가는 극장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기'의 다른 예시랄까. 마치 청년들이 다른 지역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며 로컬 기반의 활동을 전개하는 식의 거주 형태와도 비슷하다. 최근 여행의 개념이 넓어지고 공유 주거의 개념이 확대되어, 다양한 거주 방식을 실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Vrijburcht 극장의 10주년 기념식


그의 설명을 들으며 공연장을 둘러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로 소통하며 예술을 즐기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가슴이 뛰었다. 이런 극단은 정말 처음 들어봤다. 내 집 안에 극장이 있다니. 공연 덕후인 나에게는 특히나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비전문가와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극장이, 이렇게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유명 제작자나 감독이 있는 전문적인 극장이 아니라, 50여 가구 규모의 코하우징 안에서 자원봉사로 시작된 극장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만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만큼, 연간 5000유로 정도의 지원금을 지자체에서 받고 있다고 한다. 입장료는 단돈 6-10유로로, 매우 저렴했다. 이 역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터다.


(왼) 요한 씨가 보내준 2017년의 연극 축제 시절 입구, (오) 내가 2019년 봄에 찍은 입구


요한 씨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나 혼자 코하우징의 외부를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늠름하게 생긴 개 한마리와 마당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고 있는 주민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한 씨 외에 다른 주민들과도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말을 걸었다.


거주한 지 오래 되었다는 그녀는 코하우징에서의 삶을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옆집 아이들이 커가는 것도 같이 볼 수 있고, 거주민들끼리 같이 취미를 즐기기도 좋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공연을 좋아해 Vrijburcht 극장의 프로그램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말에서 극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전 우리 극장이 정말 좋아요. 전 공연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멀리 나가지 않고 내 집에서 다양한 공연도 보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저 혼자 독립적인 가구에서 살았다면 절대 불가능할 일이잖아요." 짧은 대화를 마친 뒤 옆에 있던 함께 코하우징에 거주하는 친구와 모임을 가기로 했다며 그녀는 인사를 건넸다.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과 문화는 도시를 판단할 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발현하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바란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자본이 많은 곳에 극장이, 예술이, 문화가 몰린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으로 '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과 문화예술 개념은, 정말이지 신선했다. 자원봉사로 이루어지지만 그 어느 극장 못지않게 성공적인 행보를 선보이고 있는 Vrijburcht 극장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예술과 문화가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50여 가구만 사는 곳이어도, 문화예술과 함께한다니. 정말 멋졌다.


요즘 트레바리나 각종 취향 기반의 모임이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공동체/커뮤니티 문화와 결합한 공연 생태계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두 가지의 특성을 결합한 흥미로운 발전이 이루어지지는 않을까. 마치 이곳처럼.




이전 03화 집값이 너무 비싸,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