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진화를 만드는 또다른 힘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2019

by cell

진화를 만드는 힘은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있는데, 성선택을 자연선택과 같은 급의 위치에 놓고자 한 비주류 이론이다. 보통의 과학책과 달리 연구분야인 조류에 그치지 않고, 인류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특히 페미니즘과 진화론을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보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도 강조하듯이 유인원과 인류에 관한 연구는 가설이며, 앞으로 연구해야 할 숙제다


진화론이라고 하면 다윈을 떠올릴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제이굴드가 현대의 대표적인 학자들인데, 일반적으로 진화를 만드는 힘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한다. 책은 국내에 흔치 않은 성선택 이론을 소개한다. 주류 이론에서는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위로 놓는다. 아름다움은 자연선택에 잘 적응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암컷은 수컷의 외적인 지표를 보고 선택한다. 반면 '아름다움의 진화'에서 성선택은 패션 트렌드처럼 '미적인 쾌감'을 위한 것이다. 때로는, 생존에 불리할 때도 있다 성선택은 수컷의 성적강제와 암컷의 자율성, 두가지 힘이 갈등하며 작용한다. 이를 영(숫자 0)가설=귀무가설로 설명하지만 이해가 쉽지는 않다. 조류를 연구해보면 이들의 구애활동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므로 아름다움으로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진화론이 적응주의적이고 결정론적이라고 느껴 답답함을 느낀 이에게는 신선한 내용이다


보통 과학책은 조류면 조류, 곤충이면 곤충에서 끝난다. 인류에 시사하는 바가 있더라도 인류학자가 아닌 이상 엄밀한 증명없이 책을 쓰지 않는다. 이 책은 과감하다. 조류얘기가 끝나는 중반부부터 어쩌면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인류를 다룬다. 동식물의 진화는 인류의 특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많은 종에서 수컷이 번식에 기여하는 바가 정자 제공에 그친다면, 인류도 그에 따른 정자를 많이 퍼뜨리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인가. 침팬지가 폭력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인류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등은 쉽게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저자는 인류의 진화를 4단계로 분류한다. 자연 진화와 문화 진화를 구분한다. 사실 책에서도 경계가 혼동스럽지만, 구분을 시도하는 건 의미가 있다. 암컷의 성적자율성이 여성의 성적자율성의 근거가 될 수 있고, 성선택 이론이 동성애를 설명하는 젠더이론과 융합할 수 있다는 설명은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다. 페미니즘과 배치되는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데 상당분량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조류학자다. 성선택을 증명하는 근거가 조류연구결과다. 누누히 얘기하듯이 인류나 유인원의 성선택 이론은 가설이다. 앞으로 해결해야할 숙제를 끄집어내는 것이지 해답을 주고자 한게 아니다. 생물학 전공자도 아닌 일반인이 진화론 책도 다 못읽고 이해수준도 초보적인 상황에서 비주류 이론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읽으면서 회의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1년여간 진화론에 느낀 답답함을 깨는 새로 잡히는 시각이어서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진화를 설명하는 힘이 적응 하나라는 점,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시각에 의문을 품은 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간간히 등장하는 연구자나 이론은 페미니스트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어떤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지 단서를 주기도 한다. 앞으로 이런 책이 더 번역되고 팔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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