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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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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Sep 21. 2022

마음을 절며 나아갈 것이다



이웃 중에 한쪽 다리가 편치 않은 청년이 있다.

어쩔  없이 절뚝이며 걷는데,  청년이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다리를 절지 않는다.

이후 그가 홀로 걷는 모습을 창 밖으로 몇 번 보게 되었다. 캄캄한 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그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얼마 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예전 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청객들 중에 왜 또 하필 그날의 기억인가.

나는 중2였다. 아빠가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불 꺼진 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침대에 누워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술냄새가 풍겨왔다. 아빠는 내 가슴이 얼마나 커졌나 만져보자며 내 잠옷을 들추고 맨살에 손을 넣었다. 반사적으로 '만지지 마'라고 내가 소리치고 일어나 앉았다.

순간 아빠의 눈알이 서슬 퍼렇게 뒤집혔다. 그리고 벼락 치듯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후려갈길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총동원해 닥치는 대로 때렸다. 온몸에 붉은 줄이 서고 긁혀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울부짖으며 바닥을 기고 잘못했다고 손바닥을 비벼 빌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의 '이게 감히' 소리와 희번덕 돌아가던 눈알, 그 모든 장면이 뇌를 헤집어 놓는다. 지금도 온몸에 생생히 전율이 돋고 턱이 덜덜 떨리듯이 아려온다.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한밤중의 소동에  엄마가 안방에서 나왔더랬다. 아빠가 퇴장한  엄마는 아빠가  때문에 때렸냐고 물었다. 뭐라고 할까.  사람보다  가혹한 당신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는 당신들에게. 당신에게서 무슨 욕이 나올까 두려워 나는 입을 닫았다. 엄마는 잠도  자게 한다는 원망과 갖은 비난을 내게 던져두고 가버렸다. 엄마의 '시끄러워' 소리. 나는 입술을 오므려  물고 목으로 울었더랬다.


그날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지금도 침대 구석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웅크리게 된다. 온몸에 찌르르한 전율과 함께 몸은 한 줌으로 쪼그라들 것 같은데 뇌는 벙하니 부풀어 터져 버릴 것 같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나는 그날로 그 집에서 혼이 나갔다. 그리고 짐을 싸서 호주로 떠났다. 그 집에서 그 나이를 넘겨 목숨 달고 살아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제정신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이상은,

내가 아닌 모습으로 못살겠다.

나는 미쳤다 덜 미쳤다 한다.

제정신이 들락날락한다.


나는 마음을 전다.


왜?

내가 내 가족을 미워하기만 한다면 마음을 절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한마음은 밉고 한마음은 사랑하여 그렇다 왜.


상처가 깊다. 사랑이 깊다. 상처가 깊다. 사랑이 깊다. 상처가 깊다.

사랑이 깊다. 상처가 깊다. 사랑이 깊다. 상처가 깊다. 사랑이 깊다.

나는 내 부모가 외로웠음을 알겠다.

그들 역시 상처가 깊다. 사랑이 깊다.


이게 지금  모습이다. 그리고  그게 괜찮다.


언젠가는 사랑 앞에 무릎을 꿇고 걸을 것이다.

어쩔  없이가 아니라,  힘으로  의지로  선택으로 가족을 사랑할 것이다. 진짜 사랑다운 사랑에 설득되어 내가 진짜 사랑다운 사랑을 배워서 내가  가족을 강하게 사랑할 것이다.


지금만은,

 마음절기를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난 얼마든지 절 것이다. 미쳤으면 미친대로.

편하게 마음을 절며 나아갈 것이다.

이왕이면 당당하게, 시원하게 절란다.

 모습 그대로.


몰래 절지 마!

당당하게

시원하게

편하게

절어 인마!

나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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