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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Aug 22. 2023

함께 걷는 자 영원을 사는 자

[성경] 창세기 5장




성경 창세기 5장을 읽는다.

신이 빚은 최초의 사람 아담의 계보가 나열된다. 신이 내린 번영의 축복을 타고 그 후손들이 팔구 백 년씩 장수하며 나는 가운데, 비교적 짧은 365년 생의 '에녹'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사람 이름과 자손, 그리고 수명만 주욱 기록하고 지나는데 에녹만 특별히 몇 줄 적기를,

 "에녹이 65세에 자식 낳고 그 후 300년을 신과 함께 걸으니 365년을 살았더라. 신이 그를 친히 데려가기로 흔적도 없이 갔더라."

조상들이 자식 낸 것이 업적이라면 에녹은 신과의 동행이란 업적이 따로 있다. 살았다는 기록은 있으나 다른 인물에게는 정확하게 있는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 신이 그를 홀연히 데리고 영원을 함께 간다 짐작하면 사람 숫자의 수명이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받들겠다. 


'함께 걷는다'는게 뭘까?

같은 편에서 나란히 서든 따르든 같은 길을 간다는 것.

같은 것을 보고 나눈다는 것.

감히 신의 곁에 서는 것. 그리고 그리 하기를 신이 허락하는 것.


사람이 당시 땅 일구며 노동하는 고행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 에녹은 신이 밥 준다고 꼬리치고 따르는 것도 아니고 목줄 맨 것도 아닐 테고.

같이 걷고 싶어 간다면 좋아서 따르는 것. 신이 어디 가시나 보고 쪼르르 따라 나와 뒤만 쫒아도 좋았을까. 

신이 가는데 좋은 것만 있지 않다는 것을 조상들이 저지르는 사건만 봐도 알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다면 동네 바보가 아니고서야 '신 바라기'아니겠는가.

존경하고 궁금했으려나, 또 감히 걱정했으려나.


어른들과 부모들은 자신들만이 아이들을 걱정하는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단다. 어느 아동전문가가 말하기를 부모가 제때 집에 안 돌아오면 아이들이 자꾸 전화하는 것이 그 부모가 집에 오다 어찌 되었을까 걱정이 되어 하는 것이라고. 나도 그랬다. 부모를 지키는 마음, 사랑하기에 그리 하는 것이다. 

에녹이란, 신에게 그런 자식이 하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제 식구 낳고 먹고살기 바삐 팔구백 년을 살아가며 수세대가 지나도록 그리 안 하는데, 이제야 곁에 에녹 하나 서는 것이다.  

신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사정보다 사랑이 앞섣으니 그 곁에 다가오는 것이리라. 다들 내 곁에 신은 부담스럽고 신의 혜택만을 못 잡아둬 안달할 때, 그는 기꺼이 자신이 신의 곁에 가서 서는 자 된다. 


에녹이란 존재의 '존제(존재하는 주제는)'는

'신이여, 당신은 혼자 걷지 않습니다.'

'신이여, 당신 곁에 내가 있습니다.'


신과 에녹이 지금도 함께 있다. 

신은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은 신을 찬양하며 시 하나 떠올라 적어본다.





신이 홀로 나서는 새벽 산책

찬 이슬맞고 숲으로 들어설 때

뒤에서 조용히 작은 발자국 소리 나 돌아보니

역시나 에녹이 섰더라.

"에녹아, 공기 찬데 왜 나왔느냐."

곁에 서라 손짓하고는

"까치가 부지런타. 제일 먼저 일어나 제 식구 찾아 우는구나.

아카시아 향 깊으니 6월이라지?"

신이 잠시 세상 생각에 잠길 때에

어느새 노을 지고

에녹머리가 희게 새어 그 빛으로 물들더라.

"아이야, 이제 내 산책 한 바퀴 돌았는데

니가 벌써 노을되어 비추는구나.

내가 비록 영으로 떠돌지라도

니 발자국 보면 어디로 다녔는지 알겠다.

같이 가련. 내 발이 니 발이다 하고.

니내 곁에 섰으니 서로 혼자 걷지 않음이라.

같이 걷는 발 귀하도록

내가 고이 너를 데려가리라.

다리 아프지도 발 상하지도 않으리라."

신이 에녹을 안아 드사

둘이 소리 없이 나아가더라.






세상은 차갑다.

신은 하루에도 수없이 내쳐짐을 당한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왜 나한테 이러십니까.

오랜 세월 내가 외친 말로 신이 사람 앞에 무릎 꿇어야 마땅하다 여겼다. 

나에게 이리 쳐지고 저리 쳐지고도 신이 나를 붙들고 있었던 것은

그 자리에도 신의 곁을 지키고 있던 에녹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이 아무리 억울하게 해도 동행자 한 명만 곁에 있어 증인 되어주면

위로가 되고 힘이 나고 응원이 될 것 같다.

나에게는 그 한 분이 신이고,

신에게는 그 한 존재가 에녹이다.

쓰고 단 모습을 다 보고도 거기 섰으니

그가 신을 지킴이라, 신이 나를 지킴이라. 

그럼 또 엎어졌다 일어서서 나아가는 것이다.

에녹이 핏줄로 자손을 내었고 그가 한 일에 대한 기록으로 그것 읽고 배우는 자손을 또 내고 있으니, 지금 수많은 에녹이 신과 함께 걷고 있다. 

그 힘으로 신이 걷고 그 신의 힘으로 또 에녹들이 걸어 간다.

이제야 그중에 내가 있음에,

같이 걷습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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