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창세기 4장
성경 창세기 4장을 읽는다.
사람이 낳은 최초의 사람 '카인'이 탄생한다. 아담과 이브 사이에서 남자아이로 나기로 이브가 이르기를,
"신이 도우사 나도 사람을 내었다."
자신들은 신이 빚은 최초의 사람으로 흙과 신의 숨결, 그리고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된 피조물 격 사람들인데, 자신들도 신이 허락하사 사람을 내었다 생각해 보라. 그것이 얼마나 영광된 일인지. 그리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탄생시킨 첫 사람이라는 생명이 얼마나 귀하겠는지.
신인들 그 아이가 오죽할까. 자신의 모습으로 빚은 피조물이 낸 또 같은 모습의 창조물. 아담과 이브가 얼마나 대견하겠으며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그 생명을 들여다보았겠는가.
그리고 아담의 남동생인 아벨이 난다.
세월 지나 카인은 땅일구는 자로 땅의 과실을 자신의 주(신)께 드리고, 아벨은 양 쳐서 얻은 첫 새끼들과 그 기름을 주께 올리는데, 주는 아벨의 것은 흡족해해도 카인의 것은 흡족지 않게 보았단다. 그 자리에서 카인의 얼굴이 분개함을 보고 주가 이르기를,
"네가 일을 정히 했다면 내가 받았겠다만, 그리 아니하면 죄가 너를 노리고 오니, 죄에 넘어가지 말고 그것을 다스리라."
여기서 신이 반드시 기억하는 것은,
하나. 사람은 땅과 신의 창조물을 관리하는 임무가 있다. 사람 손에 만물이 달려있는데, 그 중책 맡은 자를 임무 맡긴 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제대로 된 책임자로 길러내는 것이다. 일이 바로 되었나를 보고 알려주면서.
더 중요한 하나. 이제 세상에 발 디딘 천지도 모르는 사람이 성경 앞 장에서 선과 악이라는 위험한 지식을 취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 손에서 어떻게 쓰일는지. 이미 그 지식의 마스터로서 악의 속성을 꿰뚫는 신이 사람에게 하는 경고이자 우려, 무엇보다 가르침은 악에 휘둘려 죄짓지 말고 그것의 주인이 돼라. 양육하며 제자 되는 사람에게 주는 지혜이고 해결책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은 꼰대가 되고 말았다. 무슨 좋은 의도를 가졌고 무슨 입장을 취하고 있든, 일의 본질이 뭐든, 듣는 자가 자기중심에 빠졌고 마음이 삐뚤어졌으면 신이라도 피할 수 없는 타이틀. 아무렴 꼬았던 카인은 만만한 아벨을 불러내 살해하고 만다. 신이 형제를 한마디 비교도 하지 않았더라도 내 탓, 감히 신 탓할 수 없으면 그놈 탓이 되는 법.
문득 한 연예인의 이웃집 아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이웃집 아이가 자기 집에 전화하여 우리 집 개가 새끼를 낳았으니 한 마리 주러 오겠다 했단다. 당연히 새끼 한 마리를 기대했던 연예인은 아이가 주겠다고 들고 온 '어미개'를 보고 황당했단다.
아이 입장에서 그 새끼는 자기가 꼭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런 갖고 싶은 새끼를 아벨이 들고 왔다고 보라. 그것도 첫 새끼. 자신보다 신이 기쁜 것이 좋다는 심성. 그 심성으로 자신의 맡은 일을 했다고 보라. 거기 자기애가 들었는가.
신보다 앞에 자신을 세우면 자기 자신이 신보다 신인 '우상'이 된다. 자기애란 우상이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신을 경시하고 한 치 앞을 못 보는 눈먼 악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
신이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카인에게 물었을 때, 카인은 저가 무슨 아우치기(양치기처럼 동생치기)라도 되느냐, 모른다 하고 거짓으로 고한다. 죽은 양치기 동생을 대고 비아냥 거린 것이다.
이 때 신은 이미 아벨의 죽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물을까?
카인 스스로 자기 잘못을 아는가. 고백할 수 있는가. 뉘우칠 수 있는가를 보시는게다.
헌데 녀석의 답 모양새가...
그리자 신의 분노와 저주가 터진다.
"너는 땅으로부터 쫓겨나리라. 니 손에서 떨어진 아우 피를 마신 땅은 너를 위해 작물 하나 내지 않을 것이며 너는 세상을 쉼 없이 떠돌게 될 것이다."
이에 카인이 반박하기를,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그러다 내가 죽으면 어떡합니까?"
어이구, 이 한결같은 인간아!
그새 또 마음 약한 신은 카인에게 약속을 해주신다.
"네가 죽으면 내가 일곱 배로 갚아주마."
그리고는 카인이 죽음을 피하도록 친히 표식까지 해줘 보낸다.
후에 카인은 후손을 여럿 낸다. 신이 만물을 창조하며 최초에 내린 번영의 축복이 그에게도 끝까지 유효한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 역시 두 아들을 하나는 죽음으로, 하나는 추방으로 잃고도 셋째 아들을 얻는다.
저주보다 강한 것이 축복이고
죽음보다 강한 것이 생명.
지식 나무에 열매 형태로 달려있던 선과 악은 씨를 뿌린다. 악은 아담과 이브로부터 카인에 이르러 사람 한 대가 더 났을 뿐인데 번식을 넘어 '진화'까지 한다.
선악의 마스터 신은 사람을 유혹하고 죄로 이끄는 악의 속성을 알고도 카인과 아벨 사달이 나도록 둔다. 알고도 믿어주는 것은 선의 속성인가. 악이 진화하면 선도 진화해야 한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도 기회를 주고 살려 내보내는 것인가.
사람바보 신의 선악수련이 앞으로 희로애락을 담아 성경에 이어질 예정이다. 성경은 사람에 대한 지긋지긋한 믿음으로 신이 이고지고 끌고 간다. 사람 만들어놓고 인형놀이 하는 신이었으면 선이고 악이고 내키는 대로 뚜들기고 해결하고 말 텐데, 선악이란 필요하니 있을 테고... 사람을 정말 인격적으로 대하는 생명존중, 자유의지의 신이라 그런가, 게다가 신의 시간이 영생이라 그런가, 한두 번 아니 수백 수천 년을 믿어주고, 사고쳐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될 때까지 수습하며 간다.
신이 카인에게 첨에 죄에 휘둘리지 말고 다스리라 하고 보낸 것도, 그가 살인하고도 살려 보낸 것도 '너는 할 수 있다'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선의 힘을 믿은 것일 터.
이제 선악을 손에 쥐고 태어나는 핏덩이들이 땅을 뒤엎기 시작한다.
그 험함을 알고도 같이 가는 신이 있다.
카인은 죄의 조상이면서도 악의 피해자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낳은 첫 사람이라는 혜택으로 사람과 신이 아꼈을 자,
신의 축복, 선의 축복을 단단히 받고 살인하고도 삶의 기회를 얻은 자,
저주 속에서도 축복이 돌보아 끝까지 후손 내며 번영한 자이다.
창세의 신은 카인의 행동의 편은 아니었으나
그 존재의 편이었으니
신이 늘 사람의 행동의 편은 못될지라도
언제나 사람의 편임을.
죄와 악, 저주를 넘어서고
신의 가호, 축복과 선, 생명과 번영이 함께하는 은혜로 인도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