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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Sep 26. 2023

복이 들고 싶은 집

[성경] 창세기 18장 1절~10절



성경 창세기 18장을 읽는다.

아브라함 앞에 세 명의 사내가 나타난다. 그들과 신의 말씀이 동행하여 나타나니, 그들은 신의 사자들로서 신의 뜻을 전하고 실행하러 온 자들이다. 혹은 신이 세 명의 사내의 모습으로 온 것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들을 '주(신)'라고 칭하며 그들의 발을 씻기고 서둘러 음식을 준비해 아주 풍요하게 대접한다. 그리고 그들의 예언을 받들기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내년 이맘때쯤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한다. 아멘.




오늘 성경 말씀 읽으며 떠올린 세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하나. 신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둘. 신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셋. 신을 잘 대접할 줄 알아야 복이 온다.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꼭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하얀 옷을 입고, 둥둥 떠다니며, 머리에 반짝이는 링을 두르고, 천사들이 동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 말씀으로도 나타나고,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의 모습, 또는 신의 뜻이 담긴 만물의 모습으로 얼마든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고 알아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성경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세 명의 사내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을 한눈에 알아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일단 신의 전능함을 믿고 신의 형상에 대한 고착된 개념이나 집착이 없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신의 존재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느껴왔기에  존재감으로 받들고, 그리고 사랑하기에 가족 알아보듯 알아본  아닌가 한다. 물론 그 이면에 신과 함께 한 산전수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신의 사자의 발을 씻기고 귀하게 대접한다. 그러자 신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들 것을 축복하여 준다. 비록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미 늙어 태가 닫힌 몸이지만, 신이 아들을 주겠다면 그 태가 열리고 아이가 나게 된다.


내가 일하는 호주의 어린이 센터에 '타일러'라는 초등학생 아이가 있다. 아이는 다소 충동적이라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주먹을 휘두를 때가 많다. 타일러가 처음으로 내게 주먹을 날린 때는 타일러와 '소마'라는 아이의 싸움을 말릴 때였다. 타일러는 소마가 가지고 노는 상자를 가지고 싶었고 마음대로 되지 않자 무차별 주먹질을 시작했다. 옆에서 말리는 내게 타일러의 주먹이 꽂히자 번득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어른 타일러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밑에서 온몸과 마음이 멍들며 자랐다. 훌쩍 자란 나는 폭력을 피해 한동안 엄마와 연락을 끊었댔다. 그러다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었을 때 여전히 삶의 방식이 남은 엄마가 자신도 답답하여 내뱉은 말이,

"(이것 밖에) 방법을 몰라. 방법을 모른다고."였다.

그리고 타일러의 주먹. 그 작은 주먹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타일러는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법,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몰랐다. 그 아이의 마음속 참말,

'나는 때리고 싶지 않아요'가 내 마음의 귀에 들렸다.

그 소리를 알아듣고 아이의 눈을 자세히 보니, 그 쏘아보는 분노의 눈에 혼돈과 함께 반짝이는 총명이 들어 있었다. 겉으로는 강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움이 필요한 그 아이를 이해와 돌보는 마음으로 보니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빛이었다. 드러나 과장되게 보이는 행동과 큰 소리가 아니라 작은 반짝임 중에 진실이 들었고, 그 안에 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반짝임을 붙들고 거기에 믿음을 더해 그 안에 거하는 신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일. 그리고 그 신의 뜻은 바로,

'도우라. 보살피라.'

이제 타일러의 과장된 행동에 휘둘리지 않고 부드럽게 타이르며, 너를 만나서 기쁘다는 것을 진심으로 전하여 아이의 존재를 가치 있게 하자, 요즘 타일러는 다투던 소마와도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전에 없던 양보라는 것을 스스로 하고 있다. 그건 모두의 기대를 초월하는 변화이다.

타일러에 대한 보살핌은 내가 엄마를 사랑함이고 또한 그 사랑을 일깨워준 신을 사랑함이다. 그래서 고된 하루 끝에 고됨을 뒤로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축복이 있다. 물론 그것을 어른에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욕을 100번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한 번 좋은 마음, 필사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래야 그 마음에 또 다른 감사, 또 다른 복이 깃들기에. 복은 복을 끌어당기고 원망은 원망을 끌어당긴다. 끼리끼리 논다고. 그리고 무엇이든 할수록 느는 것이기 때문에 복을 원하면 복 주는 실력을 늘리고 감사할 일을 원하면 감사 실력을 늘리고, 심지어 원망조차 실력이 됨을 조심해야 한다. 하다 보면 모든 것이 점점 쉬워짐을 또한 명심할 것. 계속 감사 근육, 복 근육을 키우다 보면 무거운 상황도 가뿐히 들어 올릴 수 있을 거야.


나는 오늘 어떤 모습의 신을 만날까 기대한다.

진정으로 눈뜨고 귀 열고 빛을 알아보기를.

그리고 망설임 없이 생명을 돕고 대접하기를.

100번 욕할 일이 있어도 티끌 같은 감사할 일 하나만 남기고 저녁에 잠들기를.

그로 인해 내 안에 복 들기를.

내가 복이 들고 싶어 제 발로 찾아오는 '복 맛집'이 되기를.


감사 아령, 복 아령 하나씩 양손에 들고

왼발에 감사, 오른발에 복.

감사, 복, 감사, 복, 감사 복으로 전진!

여기는 곧 '감사복 근육질'로 거듭날 예정이다.

그게 내가 신에게 받은 강자의 예언.

그리고 따라오는 신의 뜻은,

"(네가) 더 사랑하라."

더 사랑하는 놈이 더 쎄다 카신다.

다만, 옳게 사랑하는 법을 신에게 배울 것.

이제는 성경으로 사랑수업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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