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막 사춘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흐름 Jul 24. 2024

93퍼센트





버스를 손을 흔들어 잡았다.

탔다.

앞에서 둘째 줄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앞자리 남자의 어깨가 버티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설마.


남자의 어깨부터 모자 아래 푹 눌러진 뒷머리,

창에 비친 고개 숙인 옆모습,

몸의 비율과 옷의 취향,

남자가 가진 모든 분위기와 아우라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을 암시하고 있었다.

헤어진 지가 언젠데.


그래도 사귀는동안 4년이 넘도록 본 뒷모습이다.

다시 한번 찬찬히 살핀다.

삐져나온 뒷머리에 이제 흰머리가 골고루 섞였다.

뒤에서 걸쳐 본 안경도수가 더 높아져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그의 손가락을 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것 같아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고 반쯤 일어나

그의 어깨너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그의 앞자리 특별석에 서 있는

유모차.


그 안에 작은 여자아이가 핑크빛 볼과 입술을 하고서

그를 정면으로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아이에게 손인사를 했다.

나 여기 있으니까 안심해,라는 손짓.

아이를 보느라 그의 손을 보지 못했다.


다시 엉덩이를 내 의자에 내려놓았다.

마음이 놓였다.

잘됐다, 한 마디가 떠올랐다.


이름을 부를까 잠시 생각하는데

목적지에 닿았다.

벨을 누르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았다.

그의 코일 법한 것이 그 사람의 옆얼굴 멀찍이 걸려있었다.

눈꼬리까지라도 보이면 백 퍼센트 확신하겠는데.

상관없어.

내렸다.

93퍼센트.


언젠가 그를 마주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상상했던 적이 있다.

적어도 이런 맹물 같은 마음은 아니었는데.

앞모습이 아니라 그런가.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아 그런가.


아이의 고운 얼굴을 떠올린다.

바로 그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헤어졌어야 했겠구나.

잘했다, 아이야.

세상에 잘 왔다고, 아이의 생명에 찬사를 보낸다.


한편,

마주친 버스가

‘동네’ 버스라는 건 좀.

이사를 온 건가?

그동안 기가 막히게 마주치지 않은 것인가?

이 7퍼센트의 아리송함.

인생에는 왜 마침표가 확실하지 않냐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정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