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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n 24. 2020

매운 양념 더 넣어서 주세요.

feat. 신천 할매 떡볶이

'진상 고객을 만났다. 자그마치 1시간이나 말도 안 되는 불만을 쏟아낸다. 딱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더 웃긴 건 뭔가를 바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단순한 감정 분풀이를 하고 있다. 아, 내가 그만둬야지. 내일 출근하면 사람이 아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예보를 보니 큰 비가 오늘부터 내일까지 일어질 것이라고 한다. 문득, 콜센터 근무할 때가 생각났다. 비 오는 날은 특히 민원 전화가 많다. 날씨가 사람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드는 것인지, 비가 와서 불편함이 증가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날씨가 안 좋으면 기본 세팅이 저기압인 채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꾸물거리며 습습하게 시작하는 출근길은 마음도 무겁다. 대체 오늘은 또 무슨 몹쓸 말을 들으려나. 걱정이 앞선다. (이때만 해도 상담사 보호에 관한.... 이런 게 없었다.)


이런 날은 점심 메뉴가 거의 정해져 있다. 매운 떡볶이 아니면 회사 앞 부대찌개에 반주. (쉿, 술 먹고 오후 상담한 건 비밀이다.) 일반적인 점심을 주문해서 먹었다면 그날은 로또 맞은 날이다. 평범한 진상을 만났거나, 정말 운이 좋아 일반 상담만 했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는데 화를 내지 않을 방도가 없다. 분이 풀려야 오후 전화를 받을 것이 아닌가. 할매 떡볶이를 주문해야겠다. 뭐가 들어가서 그렇게 정신없이 매운지는 궁금해하지 않겠다. "떡 두 개, 튀김 두 개, 어묵 하나요." 끊기 전에 매운 양념을 따로 더 담아서 보내달라고 당부한다. "양념 많이 주세요."


사진은 보기와 다르게 전혀 맵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먹은 남편표 떡볶이


나는 매운 걸 잘 못 먹는 편이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들도 어린 덕분에 남편은 칼칼한 음식 구경을 못 해본 지 8년이나 됐다. 매운 게 먹고 싶으면 라면을 찾는 불쌍한 남편이다.

이런 내가 한 시절 점심에 매운 음식을 먹고 저녁에 불닭발을 찾는 사람이 된 적이 있다.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에, 다들 그렇게 먹으니까. 열 받으면 매운 걸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아이가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단다. 특정 브랜드를 딱 집어 그 라면 매운맛을 먹어야겠단다. 날 닮아 매운맛에 약한 아이가 특히나 아이 셋 중에 라면을 제일 안 좋아하는 아이가 웬일이지 하면서 끓여줘 봤다. 

짐작하건대 보고 있는 유튜브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 찾아보니 아이들이 컵라면을 직접 끓여먹는 먹방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 젓가락을 먹더니 아이가 기가 막힌 말을 한다. 

"아, 이제 스트레스가 좀 풀리네."

"뭐?"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쌩쌩이도 스트레가 있니??"

"어, 그럼."

"무슨 스트레스를 받았어?"
"코로나 때문에 가고 싶은데도 못 가고, 학교도 못 가고, 친구도 없고.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데!!!"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뒷목 잡고 넘어갈 소리가 아닌가. 기가 차서 허허 웃고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그 나이에는 나름의 고민과 스트레스가 있는 게 당연하겠다 싶기도 했다. '그래, 내 나이에서 보니 어이없는 거지 너는 힘들겠다.' 결국 라면은 1/3도 못 먹고 다 버렸고, 끼니를 제대로 못 챙긴 아이는 영양가 있는 간식으로 이후의 허기짐을 달랬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정말 매운 걸 먹으면 정말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까?


Photo by Thomas Evans on Unsplash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음식과 자신의 몸 반응을 연관시켜 생각할 줄 안다. 그렇기에 영양가가 풍부해서 에너지가 충족되는 몸의 피드백을 받은 음식을 선호하게 되고, 먹고 나서 구토나 어지럼증 혹은 독성 반응을 경험하였을 때에는 해당 음식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다만 여기에 예외의 경우가 있다.


저자가 있던 곳에는 로코풀(locoweed)이라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독초가 있다. 로코풀은 가축과 야생동물에게 해로울 수 있는 피토케미컬을 분비하는 풀 중 하나이다. 여러 식물 중에 제일 먼저 자라고 영양분도 많아 주로 봄철에 로코풀 중독이 많이 발생한다. 이 풀을 먹은 동물은 로코병이라는 증세를 일으키며, 미국 서부에서는 흔한 식물 중독이다. 


아니, 바로 직전에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똑똑해서 몸의 반응으로 해로운 음식을 기피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 놓고서는 중독이라니. 설명이 필요하다.


<영양의 비밀>은 중독에 관련한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른 봄, 로코풀이 대지를 덮기 시작하면 소는 그걸 먹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조금 먹어보았더니 별로 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에너지와 단백질이 풍부해 당장은 아주 좋은 먹이 같기도 하다.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도록 해로운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초식 동물이 로코풀을 먹으면 천천히 조금씩 동물의 신경을 손상시켜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이는 온몸의 장기와 상피세포, 뉴런에 구멍이 생기는 공포 현상으로 인한 것인데, 어느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로코풀 섭취를 멈추면 해결된다. 결국 독성으로 인한 반응이 섭취와 시차가 발생하면서 우리 몸은 음식이 원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중독 증세가 뚜렷이 나타날 무렵이면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버리게 된다.



Photo by Peter Bond on Unsplash


맛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을 때 나타나는 뇌의 행동의 변화는 약물 남용의 증상과 공통점이 있다.  
<영양의 비밀> p.351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감소할 수 있다. 단기적 이득을 위해 장기적 이득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덕분에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진화적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장기적 목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영양의 비밀> p.354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매운(매우 많이) 떡볶이를 먹음으로 스트레스가 풀렸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음식을 섭취함으로 인해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채 서서히 작용하는 독약 같은 음식을 매일 마주한 것은 아닐까? 그 음식 자체로도 충분히 나쁘지만 그런 음식일수록 가지는 강한 중독성 때문에 더욱 복합적인 문제에 노출된다.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그 맵고 매워 입도 속도 얼얼하던 떡볶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설탕과 조미료가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매운맛을 중화시키려고 밀가루가 듬뿍 들어간 싸구려 어묵과 밀가루 범벅인 튀김을 잔뜩 먹었다. 설탕과 인공향료 덩어리인 쿨피스를 두 통이나 마셨고, 그래도 가라앉지 않는 속에 위장약을 때려 넣었다. 꼭 그렇게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했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보니 어른들 말씀이 다 맞더라는 아니고 맞는 게 많더라. 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했는지.(책을 보면서 성장기 아이들은 왜 이게 어려운지도 알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왜 떡볶이 좀 그만 먹으라고 했는지. 과자보다 견과류를 권했던 이유도 알 것 같다. 라면은 몸에 안 좋으니 국수를 말아주겠다고 하셨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혹시 오늘도 순간의 만족을 위해 장기적인 목표는 뒷전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순간의 만족이 꼭 필요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사람이 매번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그게 가능했으면 '후회'라는 단어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가능하면 선택의 우위를 장기적 안정과 만족을 위한 것에 놓으면 어떻까? 


어제부터 아이들이 치킨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내일은 꼭 치킨을 사 먹자고 약속을 했다. 미안하다, 오늘 엄마가 그만 이런 책을 읽어버려서 도저히 치킨은 못 먹겠다. 대신 닭볶음탕 평소보다 더 맛있게 해 주마. 부디 이런 엄마를 이해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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