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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22. 2020

식당 주인은 다음 생에...

feat. 심야 식당에서 찾은 기버의 삶

엄마가 되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에 꾸었던 꿈이 하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도 그랬듯, 귀가 얇고 모든 것을 좋게만 보았기에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어느샌가 주인공에 물들어 '저렇게 살면 좋겠다.' 하는 나를 만나는 건 뻔한 결말이었다. 



<심야 식당>은 시즌 1이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후 해적판으로 처음 봤다. 돌아보니 그 시절 우리에게 일본 드라마는 지금의 한류만큼 핫했을지도 모르겠다. 


"심야식당"
시리즈 : 시즌1-4, 극장판
제작연도 : (시즌 1) 2009 / (시즌 2) 2011 / (시즌 3) 2014 / (시즌 4) 2016


한국에서도 드라마로 나온 적이 있어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간단히 내용을 소개하자면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영업하는 식당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이 잠든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 그 속에 있는 많은 이야기가 무심한 듯 인정이 넘치는 주인장과 하나하나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눈앞에 펼쳐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요리를 좋아하니까 저런 식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렇게 따뜻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즈음 시골 어느 마을에서 '심야 식당'류의 책방을 하는 이야기를 담거나 외국 어딘가 작은 마을에서 같은 류의 한국 음식점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도 꽤나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주로 보던 드라마와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아보라면 '사람 냄새'를 들 수 있겠다. 어디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쉽지 않고 자꾸만 소외되는 듯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단 한 곳. 정성이 듬뿍 담겨있는, 나만을 위한 소중한 요리로 삶을 응원받는 느낌이 필요했던 시기였을까? 아마 그 위로가 간절했기에 그런 위로를 건네는 삶을 사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향력은 여러 단계에 걸쳐 유지되며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으로 세 다리 건너까지 퍼져 나갑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공헌을 하면 그 결과로 다른 세 명이 영향을 반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든 사회에 더 많이 공헌합니다."<기브 앤 테이크> p. 103


내가 과연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나에게 기버의 삶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글을 읽다 보니 문득 <심야 식당>을 꿈꾸던 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조금씩 영업의 종류가 바뀌긴 했지만 늘 사람을 만나고 베풀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식당, 책방, 북카페. 간판만 바뀌었을 뿐 한 뿌리에서 나온 꿈이다.


Photo by Kevin McCutcheon on Unsplash


지금 보니 나는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다. 일단 꾸준히 같은 시간에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자리를 지켜본 적이 없다. 둘째, 손님이 그리워하는 그 맛을 낼 재주가 없다. 책방의 경우 손님이 필요로 하는 책을 골라줄 만한 능력이 없다. 셋째, 손님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공감 능력의 부족이라는 점이 결정타다. 여전히 개인주의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 저런 따듯한 주인장이 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다.


무엇보다 심야 식당의 기본인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내게 있긴 한 건지... 조목조목 따져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만약 저런 식당을 정말 하고 싶었다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들아주는 것이 생활화되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관계가 단절되다시피 하며 살고 있으면서, 다른 이의 마음에 공감한다는 게 어떤 건지도 잘 모르면서 무엇을 위로하고 무엇을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누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거짓은 아니다. 늘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게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말해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게 좋아서 상담하는 사람을 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나눔을 생각하며 지내지만 여전히 내가 나눌 수 있는 게 있긴 한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 내게 오늘 읽은 책이 한 줄기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타인을 위해 단 5분 정도만 투자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브 앤 테이크> p.101

누군가를 절망에서 구원해 주는 정도의 영향력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동질감이라는 위로를 주는 것이라도 할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정도라면... 내가 건넨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세상이 아직 살만한 곳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면... 어쩌면 그 정도의 선한 영향력은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이 글이, 나의 고민이 얼마나 선할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루에 5분이라는 마음가짐이라면 어쩌면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나눔이라는 걸 너무 어렵고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않기로 해본다. 그렇지만 식당 주인은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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