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4kg, 29개월 칭얼거리는 막내를 한 팔로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죽을 젓는다. 왼쪽에는 식기세척기가 모자란 손을 대신해 그릇을 씻고, 베란다에서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다. 첫째가 그림을 그리기는 동안 곁에 막내를 내려놓고 그 틈을 이용해 소음을 줄인 물걸레 청소기를 돌린다. 꼼꼼하게 하지 못하더라고 눈에 띄는 티끌과 머리카락만이라도 없애야 한다.
“엄마~”
잠에서 깨어난 둘째가 안방에서 엄마를 찾는다. 각종 소음을 뚫고 새끼의 미약한 목소리는 종착점을 정확하게 알고 어미 귓속에 정착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안방으로 달려간다. 다행히 열이 내렸다. 이틀간 아이를 괴롭혔던 고열이 드디어 잡힌 것이다. 엄마는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잠깐 숨을 돌리며 거울을 본다. ‘가냘프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던 여자는 더 이상 없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는 동안 원더우먼으로 변신하듯 몸과 마음이 변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모든 일이 서툴렀지만 티도 낼 수 없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1+1처럼 아이가 찾아오는 동시에 엄마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도 같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단지 출산을 했을 뿐인데 능숙하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씻겨야 했다. 여전히 요리는 서툴렀고 청소는 귀찮은 일이었으며 설거지는 변함없이 하기 싫은 일이었다.
어렵고 서툴고 하기 싫은 일은 가득한데 무엇 하나 연습할 시간조차 없었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이 무척 무섭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여자라면 모두 살림을 잘하는 게 아니다. 노력 없이 양육의 달인이 될 수도 없다. 이렇게 쓰고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막상 마주했을 때는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느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처음 엄마가 되고서는 꽤나 힘들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처음 업무를 맡게 되면 익숙해질 때까지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는 협업이 필수다.
장소가 바뀌고 맡은 일이 살림과 육아가 되었을 뿐인데, 대처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서툴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혼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오히려 버거워하는 모습이 보이면 능력 부족으로 내몰려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여전히 전업주부에게 '집에서 논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안일은 아무나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하냐?’
‘집 안 꼴이…….’
‘집에 있으면서 밥도 제대로 못하고.’
‘남는 시간에 부업이라도 좀 해봐.’
끝도 없는 집안일과 육아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긴커녕 무시당하고 비교당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있다. 죄책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힌 엄마가 있는 집은 행복할 수 없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진리다.
'힘들어.'
'도와줘.'
'혼자는 불가능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엄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능한 게 아니라 엄마라는 자리를 책임질 용기를 가진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이 이러한 용기를 기반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아가 행복한 아이도 행복한 남편도 많은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앞으로도 긴 세월 엄마로 살아갈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가 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엄마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