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십 분만 부르지 말아 줄래?
한 단어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엄마.”
“엄마?”
“엄마!”
“어~~~ 엄마~~~~”
한 사람을 이토록 많은 의미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되어서야 알았다.
쉬가 마려워서. 응가할 때 손잡아 줬으면 해서. 볼 일이 끝났으니까. 손 씻다 물에 젖어서. 물에 젖은 발이 미끄러워서. 원하는 곳까지 손이 닿지 않아서. 장난감을 더 가지고 싶은데 손이 두 개밖에 없어서. 로봇을 변신시키고 싶어서. 문이 안 열려서. 배고파서. 목이 말라서. 동생이 비켜주지 않아서. 누나가 놀려서. 할 말이 있어서. 부르면 좋은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졸려서. 피곤해서. 속상해서. 슬프니까. 갑자기. 그냥.
엄마라고 부르는 이유를 모두 나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어떤 이유로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말이 ‘엄마’다.
Photo by Alexander Dummer on Unsplash
코로나 19로 연일 아이 셋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숨차게 불러대는 아이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딱 10분만이라도 조용히 있을 수 있을까? 아이 셋을 불러 앉혔다. 당시 여덟 살, 다섯 살, 세 살이던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엄마가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하며 눈을 반짝였다.
“자, 여기 시계가 보이지? 지금부터 10분 동안 게임을 하는 거야. 약속된 시간이 되면 시계가 띠띠띠띠 울려. 소리가 날 때까지 ‘엄마~’ 하고 부르지 않기. 할 수 있겠어?”
“네~!”
“응!”
엄마 부르지 않기 놀이를 시작했다. '시작' 소리와 함께 책을 펼쳤다. 읽을 곳을 찾기도 전에 “엄마”소리가 난다.
“야! 아직 소리가 안 났잖아!”
첫째가 둘째를 나무란다.
“콩콩아, 왜?”
“근데…….”
“응, 말해.”
“생각이 안 나요.”
“그래, 그럼 다시 시작~!”
10초 만에 다시.
“엄마.”
다시 30초. 5초. 20초…….
한계다.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바닥나고 결국 소리치고 말았다.
“십 분도 못 참아!!!”
눈치를 보던 둘째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백만 열 개만큼 많은데 어떡해요?”
당시 둘째에게 가장 많은 수는 백만 열 개였다. 눈치를 보며 백만 열 개 손가락을 꼽는 아이를 보니 실소가 터졌다. 엄마한테 할 말이 백만 열 개보다 많다는 아이를 두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었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수천만 번의 엄마를 들으며 놀았다. 그날 아이들은 ‘엄마 부르지 않기 놀이’ 덕에 참아야만 했던(?) 엄마를 마르고 닳도록 불러댔다.
아이들이 어려서 이런 일도 있다는 걸 안다. 시간이 지나면 엄마가 아이를 부르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많이 대답해주지 않은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그만 불러!’ 하고야 만다.
하루 24시간 중 잠든 10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14시간. 분으로 따지면 840분. 아이 셋이 번갈아 가며 1분에 한 번씩만 불러도 하루 840회. 설마 그만큼 부르겠냐 싶겠지만 더 부를 수도 있다. 키워보신 분들은 수천 번이라는 것에 동의하시리라.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말. ‘엄마’
세상에서 제일 부르면 행복한 말. ‘엄마’
세상에서 제일 그리운 말. ‘엄마’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말. ‘엄마’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도 ‘엄마’
언젠가 지금 시절을 그리워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