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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Feb 27. 2021

편식하는 게 엄마 탓이야?

단순한 취향 차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오늘도 지역 맘 카페에는 비슷한 고민이 올라왔다.


'아이가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이에요.'

'명절에 과자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과자만 찾고 밥은 안 먹어요.'

''편식이 심한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저 글을 쓴 이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만 같아 꼭 댓글을 달아준다.


'아마 끼니 사이에 먹는 게 있을 거예요. 먼저 아이가 먹는 걸 정확하게 확인해 보세요. 과일을 식전에 먹으면 밥을 안 먹는 이유가 될 수 있어요. 혹은 쓰는 에너지가 많지 않아서 적게 먹는 걸 수도 있으니 관찰을 먼저 해보시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안 먹을 수도 있어요.'

'명절을 지나고 나면 아이들이 많이 흐트러지죠.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릴 거예요.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서서히 줄여주세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영양상 심각한 불균형이 일어날 정도가 아니라면 받아주세요. 대부분 좋아하는 반찬을 먹되 다른 반찬은 한 번이라도 먹는다든지 하면서 타협점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 셋을 키우면서 먹거리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길었다. 해답을 찾고 싶어서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찾아보기도 했다. 경험치가 쌓이고 보니 아이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까다롭게 굴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이 없으면 밥을 입에도 대지 않는 아이. 생밤을 사다가 꿀에 조려 끼니때마다 올려야 하는 아이. 밥이 조금만 질거나 설익어도 뱉어내는 아이. 밥상을 다 차려놓으면 그제야 먹고 싶은 게 생각나서 원하는 반찬이 놓일 때까지 밥을 안 먹는 아이... 까다로움의 결도 다양하다.




© khamkhor, 출처 Unsplash



아이 셋 중 가장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첫째도 유아기에는 잘 먹었다. 솜씨가 부족해서 몇 시간씩 걸리긴 했지만 이유식을 해주면 떠먹는지 바르는지 모를 행위를 하며 몇 그릇씩 비워내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그 재미에 엄마는 하루에 한 끼도 못 챙겨 먹어도 아이 이유식은 매일 해줬다. 먹는 것만큼은 걱정시키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편식을 시작했다.


“이건 싫어!”

“계란 없어?”

“치즈는?”

“생선!”

“안 먹어!”


잘 먹던 시금치도 싫다. 주는 대로 싹싹 비우던 씻은 김치도 싫다. 없으면 찾아대던 동치미도 안 먹겠다. 당근도 싫고 피망도 싫고 소시지도 싫단다. 오로지 계란, 치즈, 생선, 김만 찾는 아이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는 날이 늘어갔다. 나는 라면을 먹어도 아이 반찬은 직접 해서 줬건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원하는 것만 먹여도 되는지, 아니면 더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서 입맛을 찾아줘야 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편식을 하면 엄마는 검색을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 실패하지 않는 아이 반찬, 밥 한 그릇 뚝딱 비법 요리 등등 검색을 해 보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식재료를 사야 할 때가 많다. 익숙한 재료를 사용해도 서툴게 요리하는 초보 주부가 처음 쓰는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만 하면 아이가 잘 먹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엄마는 긴 시간 주방에서 음식을 만든다.


결과가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잘 없다. 혹여 처음 시도한 메뉴를 잘 먹는다 해도 다음에 또 잘 먹는다는 보장도 없다. 새로움이 사라지면 아이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요리를 못해서.’

‘아이 입맛은 엄마가 만드는 거라던데.’

‘처음부터 다양한 식재료로 이유식을 먹이질 못해서 그런가.’

‘뱃속에서부터 신경을 못 써서 그래.’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물론 태교 할 때부터 혹은 이유식을 하는 시기에 다양한 식재료를 경험하게 해주는 건 좋다. 전문가들이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아이가 편식을 하고 입이 짧은 건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상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고 생각해 보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 집을 예로 들면 남편은 짜고 단 것을 좋아하고 물컹한 식감의 재료는 싫어한다. 반면 나는 심심하고 담백한 것을 좋아하고 식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다. 이렇게만 봐도 알 수 있듯 편식은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선호도의 차이다. 어른들도 선호하는 맛이 다르듯 아이들도 선호하는 맛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크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아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유독 질긴 식감에 민감한 아이가 있다.(우리 집은 막내가 그렇다.) 이런 아이는 저작할 때 남들보다 훨씬 예민하게 많은 감각을 느낀다. 풍부한 자극은 같은 시간을 씹어도 빨리 피로감을 느끼게 만든다. 때문에 질긴 나물 반찬이나 오래 씹어야 하는 고기류를 먹이면 씹다가 뱉어낸다.


이건 아이 잘못도 엄마가 아이를 잘 못 키워서도 아니다. 예민한 감각을 가졌으니 질긴 식감에 익숙해지는 데 다른 아이들보다 오래 걸리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넘기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열 번에 한 번 정도 씹어 넘기던 것을 두 번 정도 넘길 수 있게 바뀐다.


지인 중에 음식 솜씨가 호텔 주방장 급인 엄마가 있다. 그 집 아이들도 편식을 한다. 그녀는 모든 음식을 수준급으로 해줘도 과자와 피자, 인스턴트만 찾는다며 고민한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편식은 음식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선호하는 자극이 바뀌는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모든 엄마가 음식을 잘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엄마를 떠올리면서 ‘엄마가 걸레질을 하면 물기 없이 깨끗했어. 정말 엄마 자격이 충분했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같이 ‘엄마는 언제나 맛있는 요리를 뚝딱 만드셨지.’가 엄마가 되는 조건은 아니지 않을까?

걸레질을 깔끔하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자책하는 엄마는 없다. 마찬가지로 요리를 못해서 자책할 이유도 없다. 예전처럼 엄마가 해주는 밥이 아니면 먹을 것이 없는 시절도 아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많다. 손맛이 좋은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도 좋고, 맛있는 반찬 가게를 알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좋은 식재료로 반조리 식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도 많으니 필요한 만큼 아웃 소싱하길 바란다.



편식하는 원인을 ‘엄마’에게서 찾지 말자. 입맛이 까다롭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식감과 맛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죄책감은 접어두고 영특한 자녀를 두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어떨까? 좋은 점을 찾아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 mialiaman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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