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까지 같은 집에서 찾진 말자.
아이가 친구를 알아갈 때쯤(생각보다 시기가 빠르다.) 엄마들이 하는 고민이 있다.
‘또래 친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는데…….’
'응답하라'시리즈에도 나왔지만 예전에는 문만 열고 나가도 동네 친구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진다는 말을 경험하기보단 유튜브로 친구 사귀기가 더 빠른 시대가 되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아이가 친구를 사귀는 것도 엄마가 노력을 해야 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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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4살이었을 때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나오자마자 친구가 놀아주지 않아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른 친구와 매일같이 하원을 하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노는 것 같았다. 아마도 어른들이 먼저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순간 ‘나 때문이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다른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한 탓에 혼자 놀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모둠 활동을 통해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 준다. 다만 당시에는 같이 노는 시간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잠깐 친구가 놀아주지 않아서 속상했던 것을 하루 종일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것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여 놀 수 있다는 것도 몰랐기에 애만 태웠던 것이지 실제로 아이 혼자 외톨이처럼 지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빨리 다른 엄마들과 친분을 쌓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당신 그런 거 잘 못하잖아.”
낯선 이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을 아는 남편은 우려가 담긴 시선을 보냈다. 사람 관계가 친해져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다 친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꼬집어줬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놀이터에서나 어린이집을 오가는 길에 만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열심히 다가갔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아이 친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친해지고 싶다고 다가가기만 하면 덥석 친구가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충격에서 벗어날 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상황에 제대로 보였다. 조급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면서부터 아이가 속상해하면 같이 속상해하며 공감해주는 것으로 끝냈다.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먼저 다가가진 않아도 말을 걸어오는 이에게 조금 더 열린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정도의 변화로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을 아이를 응원하면서 기다렸다. 어느 날은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며 기뻐했고, 어느 날은 친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행복해했다. 더 친한 친구가 생겼고 덕분에 엄마들끼리 인연을 맺는 경우도 생겼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둘째는 누나가 겪었던 일을 비슷하게 지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이 맞는 친구 이야기가 매일같이 들렸다.
“엄마, 나는 영수가 제일 좋아요.”
“그래?”
“우리 집에 영수를 초대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영수 엄마랑 통화를 해서 ‘영수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돼요?’ 하고 물어봐야 해”
“빨리 전화해 봐요.”
“영수 엄마 전화번호를 모르는데?”
며칠을 시달리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지금 이런 상황을 영수 엄마에게 설명하고 전화 통화가 가능한지 물어봐달라고 말이다. 다행히 영수도 집에서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했었고, 심지어 울며 난리를 부린 적도 있다며 흔쾌히 통화에 응해줬다.
그렇게 둘째와 영수는 몇 번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았고, 지금도 가끔 아이의 성화에 통화를 하고 집으로 초대를 한다. 하지만 영수 엄마와 나는 친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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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정 엄마의 친구분께 전화가 왔다. 우리 집 아이들보다 한 살 많은 손주를 돌보고 계시기에 깨끗한 옷을 몇 벌 챙겨놓으셨다며 가져다주신다는 전화였다.
두 분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 학부모로 서로를 알게 되었다가 오래도록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 덕분에 나도 엄마가 되면 친정 엄마처럼 평생 친구가 될 사람을 아이들 인연으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기대 비슷한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친정 엄마처럼 속을 다 내어놓고 지내도 될 만큼 끈끈한 친구가 이제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기대 말이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첫째는 9살이고, 막내는 4살이니 앞으로도 수많은 인연을 아이를 계기로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만난 인연 중에도 먼 훗날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이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친구가 많아야 아이도 친구가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워킹맘이라 평소에 교류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가 왕성한 친밀감을 뽐내며 엄마의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경우도 봤다.
‘아이가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해요.’
엄마가 친구를 만들어주지 못해서라고 (나처럼) 자책하지 말기 바란다.
아이도 자기만의 성향이 있다. 엄마가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천성이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오히려 그 상황을 귀찮아한다. 누구나 쉽게 친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는 사람도 있다. 아이가 쉽게 누군가와 친해지지 못하는 건 단순한 성향일 뿐이지 고쳐야 하거나 보완해야 하는 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이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친해질 권리가 있지 않을까?
아이 자신이 어떤 사람과 결이 맞는지, 같이 있는 게 좋은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릴 때 친구를 만나 익히는 사회성도 중요하지만 본인에 대한 정확한 인지도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을 만나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질 수 있다.
평생 따라다니며 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아이가 조금만 자라도 엄마가 친구를 만들어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엄마들이 먼저 친해져서 아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지 않을까?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엄마라면 아이 친구와 엄마 친구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서로의 친구까지 맞추겠다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이지 않은가 말이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친구까지 같은 집에 살기를 바라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