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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pr 11. 2021

핸드폰 주고 운동하는 나쁜 엄마

각자의 자유를 위해

하루 중 아이들이 가장 고대하는 시간은 언제일까? TV 시청 시간? 간식 시간? 

정답은 저녁을 다 먹은 후 청소가 끝난 시간이다. 이번엔 청소가 끝나길 고대하는 아이들의 사연을 풀어본다.


첫째는 음식을 먹는 시간이 유난히 오래 걸린다. 잘 먹던 둘째와 셋째도 누나의 늦장에 영향을 받아 점점 식사 시간이 길어졌다. 늘어지는 시간을 잡으려고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모두 다 실패.

시행착오 끝에 찾은 방법은 식사시간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저녁 식탁에 앉으며 시간을 확인한다.


“지금 7시 10분이니까, 긴 바늘이 숫자 8에 도착하기 전까지 먹는 거야!”


“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아이들이 밥을 잘 먹는 것은 아니다. 주로 데드라인 10분 전부터 시계 한 번 밥 한 번을 보면서 빠르게 욱여넣는다. 속이 터지지만 이때만 잘 넘기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다행히 이 방법을 쓰고부터 식사시간이 두 시간이 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지저분한 방을 정리한다. 장난감과 각종 공작 도구들을 제자리에 넣는 것은 아이들 몫이다. 욱여넣든 쑤셔 박든 상관하지 않는다.(단, 분기에 한 번 모든 것을 뒤집어 구석구석 밀어 넣은 것들을 버리는 날이 있다.) 바닥과 책상 위가 말끔하게 정리되면 아빠가 청소를 시작한다. 가만, 아빠가? 그럼 엄마는? 엄마는 저녁 먹은 그릇을 정리하고 하루 종일 사용한 부엌을 깨끗이 치운다. 혹시 못다 한 빨래나 집안일이 있다면 이 시간에 해치운다. 폭풍 같은 30분이 지나면 발에 밟히는 레고가 없는 쾌적한 상태가 된다.


© areksan, 출처 Unsplash




“엄마, 운동 나가요?”


이렇게 모두가 저녁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이유는 부부의 운동시간 때문이다. 날씨가 나쁘지 않은 날은 아이들을 두고 부부만 산책에 나선다. 5킬로미터 거리를 한 시간 정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걷기 위해 나가는 건지 이야기를 하려고 나가는 건지 헷갈리지만 운동이 목적인 것으로 하자. 


날이 너무 춥거나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한다. 줌바, 만보 걷기, 요가, 근육운동 등 종류는 다양하다. 매트 두 장을 안방에 펼쳐두고 따라 하며 같이 욕도 하고 웃기도 하며 운동과 부부만의 시간을 모두 챙긴다.


이 시간에 아이들은 뭘 할까? 이 순간을 위해 저녁시간 내내 협조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트북, 핸드폰, 태블릿 pc 중 각자 원하는 기기를 꿰차고 유튜브에 빠져든다. 


잠깐! 너희 집 아이들 영유아라고 하지 않았니? 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9세, 6세, 4세가 맞다. 4세가 자유롭게 유튜브 영상을 고르며 보는 모습을 보면 양심이라는 것이 제법 아프게 찔린다. (검색만 못할 뿐 제법 자유자재로 다룬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기저귀 찬 29개월이... 흑) 나쁘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누나, 형은 보는 데 막내만 TV를 보라고 하는 건 통하지 않는다. 막무가내 29개월은 설득도 소용없다. 안 주면 힘으로 깡으로 형이 보는 핸드폰을 뺏기도 하기에, 그냥 준다. 그래 봐야 로봇 변신 영상만 본다는 사실을 위안 삼는다.

아! 모든 콘텐츠를 열어주지는 않는다. 주기적으로 아이들이 보는 영상을 점검하고 좋지 않다고 판단되는 콘텐츠는 시청 금지 처분을 내린다. 간혹 반발이 있긴 하지만 잘 따르는 편이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운동을 해도 유튜브는 볼 수 있지만 아이들은 이왕이면 밖에서 운동하고 오길 바란다. 자세, 기기와의 거리, 볼륨 등 간간히 들리는 잔소리도 싫어서 아예 어른들 없이 자유롭게 보고 싶은 거다. 부모도 아이들 없는 자유를 꿈꾸지만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간은 우리 집에만 있는 힐링 시간이다.


유튜브를 허용하면 무한정 보게 되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가 많은 것으로 안다. 물론 나도 같은 걱정을 매일 한다. 다행인 것은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그 후에도 볼 수 있으니 생각보다는 아이들이 약속을 잘 지킨다. 정해진 시간만큼 자유롭게 보고 약속한 시간에는 불만 없이 반납한다. (단, 싫은 기색을 내비치면 다음엔 없다.)


덕분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자리 잡혔다. 무려 29개월 막내까지도.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유를 위해서 칼같이 저녁시간을 지킨다. 불량한 엄마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주고 운동을 하러 나간다.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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