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메뉴라 부르고 안주라 읽는
[여보, 오늘 점심 메뉴는 뭐였어요?]
[제육볶음]
[저녁은 뭐 먹지?]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비도 오는데 오징어 사다 해물파전 먹을까?]
[막걸리도!]
[오징어 국도 끓여야겠다!]
파전엔 막걸리. 꼬막무침엔 정종. 갈비찜과 와인. 치킨엔 맥주. 순대와 소주. 부부는 저녁 메뉴를 정하는 건지 반주를 위한 메뉴를 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주량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은 사양하겠다. 어떤 날은 소주 반잔에 알딸딸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정종 반 병을 마셔도 기분만 좋을 때도 있다. 잘 나가던 시절에야 몇 병씩(뭐를??) 마셔도 끄떡없을 때도 있었지만 지난 7년을 금주한 덕에 주량이 많이 줄었다.
기다리던 저녁 시간. 식탁 위엔 파 반 해물 반인 해물파전이 올라왔다. 뜨끈하게 끓인 오징어 국에 달걀찜까지 함께 한 밥상은 보기에도 풍성하다.
“잘 먹겠습니다~~~”
다 같이 인사를 하고 각자 원하는 곳으로 수저를 바쁘게 놀린다.
“오늘 파전 간이 딱 맞다!”
“엄마, 나는 새우!”
“나는 오징어~”
“우~우~”
호호 불어가며 밥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막걸리 생각이 난다.
“술 가져올까?”
“사이다도!”
때를 놓칠까 첫째가 말을 잇는다. 각자 잔을 채우고 다섯 명이 축배를 든다. 무슨 날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즐거운 오늘임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 elevatebeer, 출처 Unsplash
남편 회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리프레시 데이를 가진다. 고작 하루로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꾸준히 쉰다는 루틴이 생기면 계획을 잡는 것도 즐겁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날은 데이트를 한다. 평소 아이들이 있어 먹기 힘든 메뉴 중에 하나를 고르고, 맛집을 검색한다. 술 좋아하는 부부는 점심 반주에 알큰하게 취해서 데이트를 즐긴다. 고작 서너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있어 다음 리프레시 데이까지 열심히 아이들과 함께 할 힘이 생긴다.
작년 한 해는 그런 행복을 즐길 수 없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도 어린이집도 가질 않으니 남편의 리프레시 데이는 하루 늘어난 주말과 같았다. 부부만의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낮도 밤도 없이 같이 있어야 하는 통에 해방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뭐든 요령이 없어서 그렇지 찾아보면 다 길이 있다는 말이 맞다. 가을이 찾아오고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다는 판단에 둘은 집에서 술을 즐기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도 함께 말이다.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가 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술은 기분 좋게 즐겁게 마시는 거라는 교육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먹고부터 식탁에는 자주 반주가 올라온다. 아이들도 일탈을 즐기듯 탄산음료를 마신다. 덕분에 모두가 즐겁다. 한참을 웃고 떠들며 평소보다 조금 긴 저녁 시간을 마치면 설거지를 대충 미뤄두고 남편과 산책을 나간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이제 제법 동생들을 돌볼 줄 아는 첫째에게 핸드폰 하나를 맡기고 집을 나선다. 알큰하게 오른 취기에 기분 좋음이 더해져 둘은 평소보다 더 사소한 이야기로 웃으며 산책을 한다. 이렇게 부부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원만한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이라 우리는 생각한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저녁 산책 정도 외출을 하지만 조금만 더 자라면 밤 데이트를 나가도 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당신이 술 잘 마실 때가 좋았는데.”
가끔 남편은 가끔 예전 내 모습을 그리워한다. 어쩌면 술을 잘 마시던 그때의 내가 그립다기보단 그렇게 마실 수 있는 자유로움이 더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다 키운 분들은 그래도 이때가 좋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더 이상 엄마 아빠의 보살핌이 필요 없을 나이가 되면 지금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부부만의 시간이 간절하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핑계로 파전을 굽고, 감자탕을 했다는 핑계를 대며 소주를 상에 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렇게라도 둘만 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