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콕맘 예민정 Apr 11. 2021

자존감보다는 자기애

내가 먼저야!

몇 년 전부터 '자존감'은 핫한 키워드였다. 단어가 가진 고유한 의미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단어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다. 이를테면 엄마가 되기 전에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면 좋겠다.’ 정도였다면, 엄마가 되고 나서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해.’쯤이지 않을까.


‘엄마의 자존감’과 ‘아이의 자존감’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자존감을 가리키지만 육아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같이 묶여 언급된다.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덕분에 육아 서적이 말하는 자존감을 접했을 때 나는 절망에 가까운 심정을 느꼈다.


‘나는 자존감이라고는 바닥까지 긁어도 없는 사람이구나.’


이런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자책으로 이어졌다. 아이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자존감 하나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부족한 엄마라는 죄책감은 그 어떤 감정보다 무거웠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한 아이의 삶을 망칠 수 없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존감 찾기를 시작했다. 


먼저, 아이의 모든 감정을 인정해 주려고 노력했다. 짜증을 내도, 화를 내도, 편식을 해도, 동생을 미워해도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서 떠올렸다.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거야"하며 받아주는 행동이 아이의 자존감을 찾는 첫걸음이라 여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못된 접근이었다. 자존감은 이런 방식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여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버리길 권한다.


접근 방식이 잘못되기도 했지만, 당시 내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무턱대고 아이의 감정부터 받아들이고 포용할 여력 따위는 없었음을 간과했다.


아니다. 애초에 엄마 자존감은 고려하지 않고 아이 자존감만 찾아주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


‘이건 아닌 거 같아.’


진부한 전개지만 그래서 책을 읽었다. 다들 책에서 길을 찾아보라 하기에,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책을 읽었다. 



책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Photo by Firman Kholik on Unsplash



책은 오롯이 아이에게로만 향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내 안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을 먼저 찾고 싶었다. 아이가 슬퍼하는 이유에 같이 빠지는 것보다 내가 슬픔을 느끼는 이유에 집중해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 길을 찾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행동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돌고 돌아 책에서 길을 찾은 셈인가.



‘아이가 자존감이 낮아서 걱정이에요. 모든 것이 엄마인 제가 부족해서인 것만 같아요.’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좋은 엄마라서, 똑똑한 엄마라서, 훌륭한 엄마라서 같은 이유를 달지 않는다. 그냥 엄마라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같은 이유로 엄마도 아이를 사랑하는 데 착한 아이라서, 공부를 잘해서,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같은 이유를 덧붙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평소에도 아이는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엄마도 아이도 잊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좋지 아닐까?


설사 아이가 자존감이 조금 낮다고 해도 바뀔 여지는 충분하다. 아이는 엄마 한 사람 손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아이 주변에는 아빠, 가족, 친지, 지역 사회와 같이 영향을 주고받을 인연이 많다.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고 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엄마 자신을 탓하는데 심하게 몰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종종 나를 탓하기 바쁜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알겠어요. 그건 그렇고 아이는 어떻게 하죠?’


지금 아이를 고민할 때가 아니다. 우선 자신부터 챙기길 바란다.


나처럼 책을 좋아한다면 책을 읽자. 뜨개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뜨개질을 해보자. 달리기를 좋아한다면 운동화를 신고 나가 달려라. 영화 보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맡기고 영화관으로 향하길 바란다. 매일 영화 보러 가기가 힘들다면 넷플릭스를 이용해도 괜찮다. 딱 백일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보라. 


아이의 자존감을 이야기하다 말고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엄마는 모든 시간을 아이와 보내면서 에너지를 쓰기만 하는 직업이다. 충전 없이 매일 쓰기만 하면 어떤 기계든 방전이 된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라 모성애도 다르지 않다.


육아는 희로애락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다양한 감정을 무한정 쏟아야 하는 장기 레이스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자신을 위한 에너지를 채우지 않으면 금방 방전되고 만다. 에너지가 없으면 사랑도 자존감도 남아있을 수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채워보면 육아가 예전보다 덜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아! 그전에 새로운 일로 인해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타협안을 찾으면서 계속 이어가길 권한다.) 나를 중심으로 삶의 무게추가 옮겨지는 경험을 한 번은 해봐야 한다. 아이는 그다음이다.


나는 아이와 노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을 먼저 챙기면서 충전했다.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충분히 채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차오른다. 이 충만함을 기반으로 채워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쥐어짜듯 꺼낸 모성애와 질적으로 다른 감정이다. 


다시 아이의 자존감으로 돌아가자. 엄마의 사랑이 충분하면 아이도 자존감이 높은,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이제 왜 엄마를 먼저 챙겨야 하는지 이해가 되는가?


앞으로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보다 '자기애'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고 집중했으면 좋겠다.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삶은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전 12화 엄마표는 이제 그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