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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pr 11. 2021

엄마표는 이제 그만

엄마표보다는스스로표

무엇을 더 보태지 않아도 엄마들은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 해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일이건만, 양육이란 카테고리 안엔 무수히 많은 해야 할 것들이 들어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배워야 하는 수많은 학습의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 시작한다. 덕분에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도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같이 그림책을 읽고, 종이 접기를 하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 


“엄마~ 책 읽어 줘.”

“엄마~ 놀아 줘.”

“엄마~ 그림 그리자.”

“엄마~ 딱지 접어 줘.”

“엄마~”


엄마와 함께한 독서 경험에 따라 아이는 책 읽는 사람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그려준 곰 인형 그림 하나로 인해 아이가 평생 그림은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이와 하는 모든 활동을 대충 할 수가 없다.


늘 그렇듯 시작은 평범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호기심으로 시작한 검색은 금방 ‘엄마표’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만나게 한다.


엄마표 한글, 엄마표 미술놀이, 엄마표 영어, 엄마표 요리, 엄마표 간식, 엄마표 과학놀이, 엄마표 피아노, 엄마표 몬테소리, 엄마표 종이접기, 엄마표 파닉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이런 것도 찾아보지 않고 책을 읽어줬니?'

'놀이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건 학습이 아니잖아.'

'아이에게 창작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단 말이야?'

'넌 자격이 안 되는 엄마야.'


그저 이렇게 해도 되는지 궁금했을 뿐인데, 질타만 받아버렸다. 모든 엄마표를 하기엔 벅차고, 대충 하자니 뭔가 석연치가 않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을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밖에서 무슨 활동이든 하겠거니 믿으며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집에만 있으니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하루 종일 놀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유익한 활동을 해야지.’

‘바람직하게 지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엄마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짓눌리고 말았다. 다시 검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수많은 엄마표에 한숨짓는 시간만 늘어갔다. 



그냥 놀면 안 되는 걸까?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일만큼 노는 데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난감이 있어야 하고 놀이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고 엄마가 놀아주는 것이 아닌 그저 즐겁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


수많은 엄마표를 살펴보면 무늬만 ‘엄마’를 띄고 있을 뿐, 헤아리기 힘든 이해관계가 얽혀 아이에게서 어떤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을 목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과연 진실일까? 

그렇게 키울 수 있는 능력이라면 내 아이들도 스티브 잡스를 넘어서는 창의력을 끄집어 내주고 싶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고서야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가 보자. ‘엄마표 창의 미술’(이름도 정말 유혹적이다)을 하면 창의력이 쑥쑥 자라는 걸까?


제발 ‘엄마표’라는 단어는 그만 썼으면 싶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냥 그리면 된다. 아이는 놀다가도 그림도 그린다. 그리다 보면 스스로 알아서 도구도 다양하게 사용한다. 꼭 정해진 틀 속에 아이와 엄마가 들어가야 한다는 전제는 어떤 면에서 봐도 - 특히 창의력 계발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촉을 믿자. 아이는 짐작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창의적이다. 지겨우면 지겨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낸다. 모든 놀이를 다하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책도 읽는다. 굳이 ‘엄마표’를 달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왕이면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서 조금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 나 역시 가지고 있다. 다만 ‘조금 더’가 절대적 의미로 ‘조금 더’인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싶다. ‘엄마표’라는 말에 얽매여 아이들을 위한 그림만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종이 접기만 하다가 아이들 그림책만 읽고 하루가 끝나지는 않는가 말이다. 



세상엔 ‘엄마표’만 있는 게 아니다. ‘아빠표’도 있고 ‘할머니표’도 있고 ‘선생님표’도 있고 ‘온라인표’도 있다. 모든 것을 엄마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힘든 워킹맘들이 해주지 못한 ‘엄마표’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성공적인 결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발적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도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두자.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표’가 아니라 ‘스스로표’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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