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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pr 11. 2021

당당과 뻔뻔 사이

아니면 말고.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모두 잠자리에 들어야만 잠을 잔다. 특히 둘째와 셋째는 엄마가 없으면 힘닿는데 까지 잠들지 않으려 버티기 때문에 남편 혼자 재울 때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아이들이 방금 남편과 함께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먼저 밝히지만 하루아침에 가능해진 일이 아니다. 제법 긴 시간 노력한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다. 이번 글에선 어떻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들을 모아 놓고 선언한다. "지금부터 내 삶을 살겠어!"라고 외치며 퇴근 시간을 통보하거나 살림에 손을 놓는 모습은 내가 어릴 적에만 해도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그만큼 엄마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을까?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전히 가사 노동과 육아는 '엄마'에게 과하게 편중되어 있는 업무다. '엄마는 24시간 내내 근무 중' '정년도 없고 퇴직도 없는 직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나도 심심치 않게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린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살림도 하고 어떻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하냐는 실망스러운 질문 말이다.(진심으로 이 질문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개인 시간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책을 읽겠다고는 했지만 한 달에 한 권도 소화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물론 책을 읽은 지 오래돼서 집중을 못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독서 시간을 고정하지 못해서가 더 큰 이유였다. 어떻게든 시간 확보를 먼저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제부터 책을 읽겠어!" 한다고 해서 없던 시간이 뿅 하고 생기지는 않는다. 차근차근 가족들에게 '엄마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읽고 쓰며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틈틈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덧붙여 책을 읽고 글을 쓸 때에는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표현했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책을 이만큼 읽고 싶은데, 조용히 놀면서 도와줄 수 있겠어?’라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당장 배려받겠다는 마음으로 말했다기보다는 '엄마가 이만큼 책을 읽는구나'를 알려주는 수단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노력은  ‘엄마는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 8moments, 출처 Unsplash(이렇게 세 식구면 단출하고 좋을까??)



일주일에 닷새 정도는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잠자리에 든다. 매일이 아닌 이유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밤이 되어도 하고 싶은 일이 남아있는 날은 난감하다. 피곤한 아이들은 같이 잠들 때까지 버티며 칭얼거리고 책 읽기를 포기하기 싫은 그런 날 말이다. 그런 날은 남편에게 양해를 구한다.


“낮에 애들이랑 놀아주느라 책을 못 읽었어. 아무래도 아이들이 잘 때쯤에 시간을 써야 할 것 같아. 아이들은 당신이 재워줬으면 좋겠어.”


남편에게 부탁할 때 아이들에게도 같은 설명을 한다.


“엄마가 오늘 읽고 싶었던 책을 다 읽지 못했어. 읽고 자고 싶은데... 오늘은 아빠랑 먼저 자고 있자. 금방 끝내고 들어갈게.”


이때 아이들에게는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엄마가 같이 잠들지 못하고 공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고(낮 동안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음을 납득시킨다.) 이제부터는 엄마 혼자 써야 해야 하는 시간임을 밝힌다.


말할 때는 당당하게.


나의 경우 심하게 당당해서 신랑은 ‘너무 뻔뻔한 거 아니냐’며 어이없어할 정도다. 어느 정도는 농담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비굴할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당당하게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충분히 설명하고 정확하게 부탁했으니 당연히 들어주겠지.’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 요구하는 것까지만 내 몫, 받아들일지 여부는 부탁을 받은 가족의 몫이다. 싫다는 것을 강제로 요구하는 것은 부탁이 아니라 강요임을 잊지 말자.


도무지 부탁을 들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왜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도 좋겠다. 남편의 마음속에 짐작도 하지 못할 서운함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당신의 부탁이 어느 정도 간절한지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대화는 꼭 필요하다.






다행히 남편은 오늘 아이들과 일찍 잠드는 걸 흔쾌히 수락했다. 낮 시간 즐겁게 보낸 아이들도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혹여 싫다고 했어도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 다 같이 늦게 자거나, 마음먹은 일을 포기하는 차선책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나는 이러한 유연함이 부부 사이에 있어야 어느 한쪽이 무한정 양보하거나 배려하는 불균형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뻔뻔하게 원하는 걸 요구해 보자. 상대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들어주면 ‘땡큐’하면 되는 일이다. 심플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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