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배가 아파요.

엄마 손은 약손

by 로지

친정에 온 지 삼일째. 엄마(아이들 외할머니)가 첫째를 깨우는 모습을 보는 순간 타임머신을 탄 듯 어린 시절로 돌아가 몸 속에 저장된 기억이 깨어난다. 친정 엄마는 아침에 깨울 때도 일어나서 처음 인사를 할 때도 옷 안에 손을 넣어 등과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불속에서 노곤해진 살결에 손을 씻어 서늘해진 엄마 손이 닿는 느낌. 살짝 차가운 듯 시원한 듯, 엄마 손이 가지는 특별한 느낌에 금방 다시 잠이 들 것만 같은 안정감이 느껴지는 순간. 아이를 만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어루만짐이 함께 느껴졌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스킨십이 낯설면서도 기분이 좋은가보다. 간지럽다며 키득거리면서 눈을 감고 웃고 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손길도 기억에 남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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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hoa Pham on Unsplash



"엄마! 배가 아파요." 큰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둘째도 가끔 한다.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어어~ 왜 배가 아플까?" 하고는 배를 문질러주며 "엄마 손은 약속, 개똥이 배는 똥배"를 불러준다. 어떤 날은 처음부터 배가 아파요가 아니라 "개똥이 배는 똥배 해주세요."라고 한다. 최근에는 한 명이 배가 아프면 막내까지 옷을 들어 올리며 "으으~"하고 자기도 해달라고 하는 통에 '엄마 손'도 세 아이 모두 해 줘야 한다.


남편과 아이들은 스킨십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어딘가 앉아있으면 달려와 안기고 얼굴을 부비고 살결 어딘가 붙어있어야 안정을 찾는다. 잠자리에 들 때는 분명 나란히 누워 잠들지만 일어나 보면 한 명은 팔에 다른 한 명은 다른 팔에 마지막 한 명은 다리에 붙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큰 아이가 배가 아픈 현상은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어른들 표현으로 '속이 매스껍다'도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한다. 평소 멀미가 잦고 속이 울렁거리는 경우가 많은 아이라 실제로 조금만 불편한 음식을 먹어도 반응을 빨리하는 편이다. 여기에는 진짜 속이 안 좋아서 아픈 것을 제외하고도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인 현상도 있긴 하다. (편식이 심한 편이다.) 실제 메스꺼움에 가까운 아프다는 주의 깊게 살펴줘야 한다. 아이가 토하거나 체할 수 있으니 즉각적으로 대처 방법을 강구해 주는 것이 좋다.


간혹 너무 많이 먹었거나 전날 저녁을 적게 먹고 아침에 배가 너무 고파서 위장이 무리되어 아프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아이를 비스듬히 안아 배를 문질러 주면 거의 대부분 아픔이 사라지는 듯하다. 실제로 아픔이 사라지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리기는 한다. 소화제를 먹는다거나 크게 힘들어하지 않고 엄마의 약손으로 해결 가능하니 다행이다.


마지막은 관심이 필요한 경우다. 솔직히 엄마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이 경우가 가장 비중이 큰 것 같다. 혼이 많이 난 날이나 유치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원하는 대로 일이 잘 안 풀린 날. 동생이랑 많이 싸운 날. 먹고 싶은 과자나 사탕을 못 먹을 날. 엄마가 주로 동생들만 돌봐주는 날. 배가 전혀 아프지 않아서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심리적 요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건 분명하다. 쓰고 보니 큰 아이에게 '배가 아파요'는 '엄마 나 좀 봐주세요'와 동의어가 아닐까?


엄마의 다정한 손길은
자식에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후생적' 변화를 일으키고
아동기에 경험한 보살핌은
지문처럼 평생 남아
건강 개선과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

<피부는 인생이다> p.223




<피부는 인생이다>에는 신체 접촉이 가지는 소통 기능과 치유 기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1200년대 초 신성로마제국에서 있었던 실험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들은 인류 최초의 언어를 찾기 위해 엄마와 떼어 놓은 후 양육자가 된 사람들이 아기 앞에서 말도 하지 않고 만지지도 않게 하며 키웠다. 이 실험을 최초로 기록한 학자에 따르면 그들은 이 아기들에게서 한 마디의 말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아기들은 먹을 것이 주어졌음에도 말문을 트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맥락으로 1978년 콜롬비아에서는 인력뿐만 아니라 인큐베이터를 설치할 공간이 부족했다. 문제는 환자 사망률이 거의 70퍼센트에 육박한다는 점이었다. 애드거 레이 사나브리아 박사는 극단적 대책으로 엄마가 가슴에 아이의 피부가 닿도록 조산아를 꼭 안고 있게 했다. 그러자 사망률이 단시간에 무려 10퍼센트까지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캥거루 케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는 신생아 케어 방식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비슷한 이야기가 한창 화재였다. 사망선고가 내려진 갓난아이를 엄마가 품고 있었더니 살아났다는 이야기이다.


https://youtu.be/VNZ7VRgbWRg




오늘도 아이들은 엄마를 보면 두 팔을 벌려 안아줘를 외친다. 지금도 아이들이 달려와서 안기는 통에 잠시 글쓰기를 멈췄다. 엄마 무릎 위를 점령한 막내와 등을 차지해서 매달리는 둘째. (아마도 첫째는 할머니와 있는 중인 듯하다). 둘 다 안겨서 뽀뽀세례를 받고 배에 간지럼 태우기를 받고서야 다시 나가서 논다. 아마 곧 다시 돌아와 엄마 손길을 받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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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Gabe Pierce on Unsplash


성인이 되고 보니 엄마 품에 안길 일 별로 없다. 엄마를 만난 순간, 헤어지는 순간 의식적으로 포옹하지 않으면 엄마랑 접촉 한 번 없이 친정을 나서는 일도 허다하다. 평생 나를 지켜주었고 키워준 엄마의 품이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민망하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엄마한테 안겨서 어리광을 좀 부려볼까 보다. 등과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깨워주던 엄마 손길을 떠올리지만 말고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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