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야, 이제 밥을 하거라

저녁은 뭐 먹지?

by 로지

짧은 듯 긴 연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을 이용해 돌아왔더니 집에 들어서니 하루가 시작된다. 부랴부랴 아침을 준비하고 (연휴 동안 엄마가 해 주는 밥 먹으니 진짜 좋았는데) 밥상을 차린다. 다섯 식구가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가 산처럼 쌓인다. 오늘은 남편 찬스를 쓰고 그동안 친정에 다녀온 짐을 풀었다. 빨래를 돌려놓고 돌아서니 벌써 막둥이 낮잠 시간이 되었다. 아이를 재운다는 핑계로 함께 들어갔다가 제일 많이 자고 나왔다.


간단히 간식을 준비해 두고 책을 읽는다. 모처럼 원래 읽던 자리로 돌아와서 책을 들었더니 잘 읽히는 느낌이다. 옆에서 만화 주제곡이 흐르고 아이들이 떠들고 첫째와 아빠가 끝말잇기를 하는 와중에도 책을 읽는다. 간간히 둘째와 막둥이 상대해가며 읽는 것도 좋아서 계속 읽고 싶지만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할 때이다. 약속한 글쓰기를 하고 바쁘게 저녁 준비에 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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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셜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지금 나는 제대로 된 중요한 일에 나의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는가?"
라고 자신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이다.

<에센셜리즘> p.17



책에는 불이 붙여져 있는 4구 버너에 비유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하나의 불은 가족, 또 하나의 불은 친구, 다른 하나의 불은 건강, 마지막 불은 . 말 그대로 우스갯소리이니 이 네 개의 불 가운데 하나 또는 둘을 잠궈야한다는데 나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비유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매사에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서 4구 버너를 떠올리는 방법은 꽤나 효과적일 것 같아서이다.


누구에게나 한정된 시간이 주어진다. 24시간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낼지는 각자가 우선하는 가치에 기준을 두고 정하는 것이다. 가령 지금 책을 읽는 시간이 나를 위해서는 너무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가족의 건강을 위해 제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우선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데일리 리포트를 작성한 지 49일 째다. 꽤나 긴 시간 망설였고 의미가 있을까를 의심하며 보냈다. 아직 한 번도 리뷰를 해보지 않았고 일상을 개선해보려는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살아가는 매 시간을 기록하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다.



여러분의 매일, 한 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작고 점진적인 변화를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축적되면 커다란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에센셜리즘> p.103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자투리 시간들이 있다. 가령 책을 보려고 앉았으나 아이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써 버리는 시간. 책을 읽기 위해 준비하려고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 차를 우리는 시간.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 친정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는 시간 등등.

처음에는 이 시간들까지 분단위로 기록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독서'라고 쓰고 한 시간이라고 해야 하는지 55 분 후 5분 아이들 봐주기라고 써야 할까? 쓸데없이 여기에 완벽주의자 성격이 드러나는 바람에 결국 한 시간이라고 쓰지 못하게 된 이유에 화가 났다.

시간이 흘러 분 단위의 기록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서 시간을 한 시간 설정해 두고 5분 정도 시간을 뺏기고 흐름이 깨졌을 때, 내 마음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고 있는가? '왜 책 읽는데 지금 이런 걸 요구하니?' VS '이런 시간까지 여유를 두고 시간을 확보했어야지.'의 차이가 아이의 요구 사항을 받아주는 나의 태도와 아이의 기분, 가족 모두의 분위기. 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그 시간도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순간 데일리 리포트는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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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스스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글을 마무리하고 저녁을 준비할 시간. 안타깝게도 아직 저녁 메뉴를 결정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과자를 먹었더니 배가 고프지 않은 듯하고, 남편은 게임 중이다. 몇 번 공허하게 "저녁은 뭐 먹지?" 외쳐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역시 메뉴 고민은 연휴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나의 몫이 되었다. 어떤 메뉴로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할까? "에미야, 이제 밥을 하거라." 밥을 안치면서 반찬을 함께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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