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남자

어떻게 결혼을 확신했어요?

by 로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라고 한다. 내 인생은 이 사람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결혼을 했기 때문에 변화한 것이 아니다. 이제 고작 8년을 살아보고 단언하는 것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40여 년 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10대를 제외하고 1/3 가량을 함께 한 사람이다.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결혼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걸까요?"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어요?"라며 물어온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모두가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니 무조건 나의 경우를 들며 결혼은 좋아요 할 수는 없는 듯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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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에 거의 100명 가까운 남자를 만났다. 쓰고 보니 너무 자극적이다 싶긴 한데, 진짜다. 혹시 '선'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중매'라고도 많이 알고 있겠다. '결혼'을 전제로 교재를 위해 이성을 소개를 받는 행위이다.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땐 그랬었지도 아니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경우가 아예 없지도 않았던 80년생의 이야기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0대 초반부터 '선'이라는 걸 봤다. 대학생이 '선'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솔직히 당시에는 재미도 있었다. 결혼이 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23살이 중매시장에 나갔다. 재미로 맞선 상대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88번까지 기억이 난다. 그러고도 몇 번의 소개와 인연들이 있었으니 대충 지금 남편은 100번째쯤 되지 않을까?



진정으로 핵심적인 기회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좋아 보이는 기회들마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에센셜리즘> p.64



어떻게 백 명 가까이를 만나면서 결혼에 골인하지 못했을까? 신통방통하게도 적합한 사람을 잘 알아보는 눈을 가져 고를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시행착오를 겪었다. 주말마다 선보는 게 일상이 된 지 몇 년이 지나고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가 되니 나만 빼고 모두가 결혼을 하더라. 진짜 궁금했다.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을까. 그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다들 그렇게 결혼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딨니? 대충 조건 맞고 성실하고 나쁘지 않으면 맞추면서 결혼하는 거지'였다.

선보기도 지칠 무렵. 대충 조건이 맞고 나쁘지 않고 성실해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결혼을 이야기했고,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기에 수락을 했다. 그렇게 결혼 준비를 시작했지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사사건건 부딪히고 준비과정은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결혼 생활에 대한 어떤 기대도 생기지 않았고 심지어 남편감을 만나는 날이 기다려지지도 않았다. 마음속엔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행복한가? 뭘 위해서 결혼을 하는 거지? 왜 이 결혼을 해야 하지? 그를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해도 되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부모님을 모셔두고 결혼에 확신이 들지 않는 마음을 말씀드렸다. 묵묵히 듣고만 계시던 부모님은 오래지 않아 '파혼'이라는 엄청난 결정을 내리셨다. 뒷수습은 본인들이 하실 테니 잠시 외국에 나가 있기를 권하셨다. 처음에도 책임감 없이 결정을 내린 나는 마무리도 부모님께 떠맡기고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




한 번도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사태가 그 지경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무엇보다 결혼은 나와 그가 만나 함께 사는 것이 혼자 지내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거라는 걸 몰랐다. 선택과 책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거움에 대해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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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독립을 했고, 내 생계를 책임지는 것의 무게를 느꼈다. 누구를 만날지, 누구와 만나지 않을지도 스스로 결정했다. 함께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알려면 먼저 나에 대해 알아야 했다. 혼자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내가 즐거워하는 것, 행복해하는 것, 싫어하는 것, 절대 참을 수 없는 것을 알아갔다. 뒤늦게 내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에센셜리즘> p.77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도 궁금하다. 무엇이 나를 이 남자라고 확신하게 만들었을까? 책에서 말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와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남편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군더더기 없이 아니면 아니다. 처음 교재를 할 때도 '결혼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것과 별개로 호감이 있으니 사귀자.'라고 했던 남자다. 사귀면서 좋으면 결혼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닐 수도 있는 건데, 어떻게 서로에 대해 알기도 전에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냐는 논리였다. 놀라웠다. 그간 만나 온 남자들은 교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끝까지 책임질 것처럼 결혼을 입에 올렸지만 그 누구도 그 말에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도 그 때야 깨달았다.

물론 처음엔 이 남자가 사귀다가 나 몰라라 하겠다는 건가? 싶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관해 알아가면서 지켜보니 그보다 솔직한 교제 신청이 없다는 걸 알았다. 정말로 이 사람은 결혼을 한 번도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같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결혼'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신혼 초에 김치찌개를 끓인 적이 있다. 분명히 레시피에 적힌 대로 끓였는데 뭔가 밍밍하고 생각한 찌개 맛이 아니었다. 그래도 끓인 시간과 정성에 맛있는 김치가 들어갔으니 빈 말이라도 맛있다고 해주길 내심 기대했다. "음, 찌개가 덜 끓여졌네. 싱겁군."

말은 이렇게 해도 밥 두 그릇을 맛있게 비워내는 남자다. 다만 빈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다르다. 나의 경우 조금 서운하더라도 거짓말하지 않는 신뢰를 우선시 여기는 것이다. 서운한 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이지만 신뢰가 깨어지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책에는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이 나온다. "단순히 좋다고 하는 투자기회들은 그대로 흘려보내고, 정말로 핵심적인 소수의 투자기회들에 자신의 자원을 집중하세요."

최근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급격한 주가 하락과 반등 장에서도 거장들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진짜 기회라고 여기는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참으세요. 기회 비슷해 보이는 데에 현혹되지 말고 꾹 참고 기다리세요. 그래야 진짜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우습게도 이 대목에서 결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어떻게 확신했는지 궁금한가? 그럼 아직 때가 아닌 거다. 확실한 '예스'가 아니면 확실한 '노'가 되어야 한다.


어지간하면 선택해도 괜찮을 정도로 좋아 보이는 선택지가 바로 앞에 있다 하더라도, 조만간 완벽한 선택지가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까다롭게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기다리는 완벽한 선택지가 가까운 미래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혹은 주변의 상황이 여러분이 해야 할 것들을 선택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에센셜리즘>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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