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맨날 책만 읽어?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같은 <운명의 과학>을 완독 한 기념으로

by 로지

저녁 산책 겸 운동을 대신 해 부부가 걷기에 나섰다. 걷는 내내 대화는 돌고 돌아 오늘 읽겠다고 마음먹은 분량의 책을 모두 읽지 못한 것에 다다른다. 다음 책이 900페이지 벽돌 책이라 마음이 바쁘다고 했더니 남편은 말한다. "그러게 누가 그런 걸 하래? 한 번 했으면 그만 했어야지."


큰 아이가 유튜브를 찍기 시작했다. 혼자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을 찍더니 이제 편집을 해달란다. 유튜브에 올려야 하는데 날 것 그대로는 올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다. 아직 편집을 어디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엄마는 계속 닦달당하는 중이다. "엄마는 왜 맨날 책만 읽어? 언제 편집해 줘?"


나는 왜 매일 책을 읽는 것일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내가 흥미로워서 고른 책, 큐블리케이션으로 선정된 도서, 매일 서평을 쓰고 있는 멤버들의 추천도서.

어제오늘 완독을 위해 불태우고 있는 책은 큐블리케이션으로 선정된 도서다. 지난번 책도 그랬고 이번 책도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실제로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쉽게 읽으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피부과학, 뇌과학이 웬 말인가) 그동안 관련 분야의 도서를 읽어본 적이 없어 사전 지식이 부족한 이유도 있겠다. 솔직히 이런 책은 읽으면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도중에 다른 책을 집어 들기 일쑤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자면 삶을 긍정적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말들을 지속적으로 듣는 효과가 있다. 매일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잘 자며 충분한 휴식과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것의 이점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듣는 거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책들도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같은 궤를 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나'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분들의 강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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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Will Kell on Unsplash



굳이 책으로 어렵게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책 읽어라, 좋다." "운동해라, 무척 좋다." "건강한 먹거리로 챙겨 먹었니?"라고 녹음해서 들으면 간편하고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 시작을 하고서도 쉽게 포기하고 만다. 몇 번 이야기했듯 포기가 빠르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책 읽기는 완전히 습관이 되어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상태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고 무슨 이유로 건 포기하고 말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양한 관점에서 수많은 논리적 이유를 들어 '해야만 한단다, 하면 좋단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그중 몇 가지를 가지고 행동을 지속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한 예로 얼마 전까지 명상의 필요성을 막연히 느꼈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명상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해결할지, 누구에게 배워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것도 많다. 명상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매워야 했다.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를 읽으면서 명상의 방법과 효과에 대해 익혔다. 왠지 다 읽으면 명상을 꼭 해야만 할 것 같았지만 결정적으로 트리거가 되는 책을 따로 있었다. 에션설리스트가 되라는 <에션셜리즘>을 읽으면서 명상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와 닿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느 시간대에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고민을 마쳤다. 한참 명상을 하는 중에 읽은 <운명의 과학>. 뇌 과학 책과 명상이 무슨 관계가 있겠냐 싶었지만 의외로 깊은 관련성을 보인다.


명상이 꼬리핵(주의력을 집중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짐), 안쪽앞이마겉질(자기인식에 관여),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마(학습과 기억) 등 뇌 속 네트워크 무리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명상이 새로 태어난 뇌세포에 영양을 공급해서 이 세포들이 뇌에서 온전히 기능하는 연결과 회로망을 형성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신경발생 과정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이 있다. 명상은 또한 이 뇌세포들 주변으로 보호성 지방층의 생산을 촉진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코르티솔의 해로운 영향을 줄여서 신경 연결이 풍성해지도록 돕는 것으로 보인다. <운명의 과학>p.220


뇌 건강을 북돋우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유연하고 열린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하려면 운동, 그리고 성찰과 휴식을 위한 자리가 모두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운명의 과학>p.221





어렵게 읽은 <운명의 과학>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무엇을 남겼을까? 우선,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뇌 과학 측면에서 근거를 들어 타당성을 입증받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평생 학습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또 하나, 피할 수 없는 유전적인 본질, 엄마와 엄마의 엄마로부터 이어내려 온 유전적 특성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엄마 닮아서 저런 성격이네.' '저런 건 어쩜 지 아빠를 그대로 빼다 박았는지.' 하는 말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다. 다만 '저렇게 타고났으니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에 적용할지를 고민하고 다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엄마를 닮아 매사에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한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이 부분에 있어 깨달음이 컸다. '그래 저런 성향은 내가 특수한 상황을 겪으면서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메커니즘에 의해 아이가 영향을 받을 것이야.' 이제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나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적대시 여김을 당했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뒤통수 맞은 기억으로 이런 메커니즘이 생겼어. 그러니 아이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공격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계속 체험적으로 알 수 있게 도와줘야겠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훌쩍 자라 버린 아이들의 키에 맞는 잠옷도 만들어야 하고, 동생네에서 온 막내 옷도 정리해야 한다. 남편과 아이들의 머리도 잘라줘야 하고 텃밭에 가서 물도 줘야 하지만 만사를 제쳐놓고 책을 읽고 글을 먼저 쓰는 나만의 근거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배워서 나도 쓰고 남도 줘야 하니 더욱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게 오늘도 책을 읽는 이유라면 설명이 될까? 미안하다 첫째야. 오늘도 동영상 편집은 못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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