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없어

학교는 언제 가요?

by 로지

개학이 다시 미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잠잠해지는 듯하니 집단감염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으로 다시 전환했다. 특정한 그 장소에는 예전부터 사람이 그렇게 많이 있었던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물론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다.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일시적으로 감염자가 거의 없는 상황까지 가서 모두가 마음을 놓았다. 어찌 되었건 '다시' 위험하다는 말이 들리니 대체 이 사태가 끝이 있긴 한 건지 지치다 못해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 든다.


사람이기에 질병에 걸리고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다만 이번 사태가 더욱 무서운 건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의 직장은 무사(?)한 관계로 계속 출근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이들과 나는 상황이 다르다. 특히 안쓰러운 건 이번에 입학을 맞이한 첫째이다.


한창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던 첫째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 나는 친구가 없어." 말을 하고 보니 너무 서러웠던지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친구가 없는 건 아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면서 사귄 친구들. 엄마들끼리 연락을 주고받기에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는 친구들도 분명 있긴 하다. 시기가 애매해져 버린 탓에 엄마들은 일부러 아이들을 만나게 하지 않는다. 가끔 전화로 안부 정도 물어보긴 하지만, 이제 8살인 첫째가 전화나 화상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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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harlein Gracia on Unsplash


한창 새로운 공간(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 인간관계를 경험해야 할 여덟 살. 생애 처음으로 학교에서의 교우 관계를 시작도 하지 못한 아이는 '친구'가 고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우정은 뇌에 새겨져 있는 자기 보호 메커니즘입니다. 우정은 유사시에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완충하고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해지기 전에 동맹관계가 미리 확립되어 있어야 하고, 여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죠. 친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인지적 비용이 따릅니다. 하지만 우정은 이렇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즉각적인 자기만족보다 우정과 공동체의 가치를 더 우선해야 할 때가 있죠.
<운명의 과학> p.149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 로빈 더바는 우정이 개인적 행복에 기여하는 이득에 대해 단호한 의견을 보인다. 그는 '우정은 단일 요인으로는 건강과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단언한다. 우정의 영향력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를 통해 혼자 사시는 엄마에게도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는 친구는 중요한 요소임을 들었다. <나이 듦에 대하여>에서도 노년의 삶에 친구와의 우정이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보았다. 친구가 비만이면 함께 비만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친구의 친구>도 말한다.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큰 아이는 내향적이고 예민한 편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우선은 한 발 물러나 상황을 충분히 지켜본 다음 이를테면 '여긴 안전하구나' 또는 '이런 패턴의 행동을 보이는군'등의 판단이 서면 그제야 무리에 낀다. 새로운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편이 아니라서 오랜 시간이 걸려 한 두 명씩 사귀는 경향이 있고, 한 발 다가섰을 때 거절당하게 되면 열 걸음 물러나며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는 편이다.


또래 관계에서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엄마 마음에 또 걱정이 스며든다. '괜찮을까?' '잘 지낼 수 있을까?' '적응이 너무 힘들진 않을까?'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소외되진 않을까?'

물론 엄마가 걱정하는 것이 무색하게 매번 잘 적응하고 즐겁게 지내는 아이이긴 하다. 매사에 마음이 그냥 놓이지 않는 건 분명 엄마의 기우일 텐데도 쉽게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아이의 성향에 대한 엄마의 편견을 깨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절대적으로 좋은 성격, 나쁜 성격이라는 건 없다. 설사 아이가 정말 내성적이라 교우 관계에 소극적이라 하더라도 그만한 이유와 성향을 존중해주고 그걸 강점으로 바라봐주는 시선이 필요하다. 이번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본다.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재앙이 닥쳤을 때 그런 사회적 영향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이 소수 집단은 계속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어서 미래 세대를 볼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의 과학> p.159


물론 첫째가 너무 소극적이라 말 한마디도 못하고 주저앉아있는 정도는 아니다. 분명 엄마의 걱정이 과해 편중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없지는 않다. 큰 아이에게는 애정이 과한 건지 이상하게도 뭐든 에너지가 많이 집중되는 건 사실이다. 차라리 조금 더 커서 이런 일을 겪었으면 이미 맺어져 있는 친구 관계를 온라인으로 유지하는 게 가능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있다. 그랬다면 또 지금은 짐작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말이다. 무엇하나 내 의지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은 없다. 생각을 돌려 덕분에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진 이점이 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겨야겠다.


갑자기 왜 친구 이야기가 나왔는가 했더니, 수업 중에 선생님이 친구 얼굴을 그려보라고 했다고 한다. 곧이어 친구가 곁에 없다면 엄마나 동생의 얼굴을 그려도 좋다고 해서 엄마를 예쁘게 그려주었지만, "나는 친구가 없어." 하며 우는 바람에 책을 보면서도 걱정이 늘어진 엄마이다. 부디 이 상황이 무사히 지나고 아이가 새로운 친구들과의 생활이 즐겁다고 말하는 순간이 오길 바라본다.


20200512_103806.jpg 친구 대신 그려준 엄마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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