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부지런하지도 꼼꼼하지도 않은 터라 꾸준히 육아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물론 밥도 못 챙겨 먹던 시절이었으니 육아 기록이 웬 말이냐며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엄마의 시선이 담긴 일상과 생각을 남겨주고 싶었다.
많은 부모가 육아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뭘까?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 독립한 어느 때 부부가 마주 앉아 어린 시절 아이들 사진과 기록을 뒤적이며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일까?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삶이 버겁다고 느껴지거나 지치는 어느 날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자랐구나.' '나는 소중한 존재였구나.' '엄마 아빠가 이런 마음으로 키우셨구나.' '나는 귀한 사람이구나.' 하는 위로와 격려를 받기 바란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두고자 했다. 그래서 키우는 동안의 이야기와 엄마의 고민, 행동의 이유를 글로 썼다.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나의 의도가 그대로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간혹 젊은 친구들이 글을 읽고 남겨주는 댓글을 보면서 내 아이들도 저렇게 느낄 수 있겠다 짐작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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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의도가 어떠했건 간에 지금 나의 글은 조금 더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나'의 꾸준한 아웃풋의 창이 되어주고, 인풋의 이유가 된다.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행동의 기준을 세우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되었다. 멀리 살고 있는 친정 엄마에게는 성장한 딸의 일상을 전하는 매체가 되어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남편과 공유하는 채널이 되었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 때에는 아이들과 소통하거나 기억을 되돌아보는 창구가 되어주지도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살면서 남긴 디지털 흔적과 물질적 유물들이 우리를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남겨줄 가장 중요한 유산이 될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 채, 당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집중하기 바란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p.421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디지털 이민자인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고,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세상에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별 의심 없이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남편이 정리하게 될 것이다. 핸드폰은 이미 공유하다시피 살고 있으니 별문제 없이 사용하고 필요치 않아졌을 때 정리하게 될 것이다. 이메일, 블로그, 인스타 등의 계정도 시간이 지나면 남편이 정리하게 되지 않을까? 나와는 다르게 디지털 유산을 붙들고 나를 떠올리는 성향의 사람은 아닌 듯하다. 대부분의 메일과 글들은 (보지 않고) 삭제해주길 바라고, 브런치에 발행된 글은 적절하게 편집해서 가족들을 위해 책으로 묶어 남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내 모든 것을 보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없다. 그럼에도 너무 개인적이어서 가족들이 알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는지 한 번 떠올려보게 되기도 했다.
반대로 아이들은 어떨까? 아직은 어려 핸드폰도 이메일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핸드폰과 메일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이들도 핸드폰, 이메일의 패스워드를 엄마인 내가 알게 되는 것에 거부감이 없을까? 왠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다. 자녀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은 다르기 마련이니 말이다.
막내를 임신하고 일상을 인스타그램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글보다 사진이 편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이들의 얼굴이 찍힌 일상이 남겨졌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이 일 년에 한 번씩 추억처럼 소환되어 보이기도 하고, 지인들이 사진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날이 더워지면서 막내가 기저귀만 하고 집안을 쏘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 집 아이, 남의 집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니까 기저귀만 입고 집 안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셋이다 보니 집 안에 기저귀만 하고 다니는 아이가 있는 모습은 몇 년째 너무도 당연했다.
덕분에 사진 속 아이들 모습도 반라인 경우가 많다. 별다른 생각 없이 아이들 모습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는데,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사진 속 아이의 노출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염려가 담긴 말을 들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를 키워보거나 접해볼 경험이 없었기에 그만 그렇게 반응한 게 아닐까 하고 조금은 쉽게 넘겼다. 당시에는 기저귀만 입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를 읽고 보니 세 살인 막내가 자라 기저귀만 입고 놀고 있는 모습이 온 세상에 공개되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를 원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동의도 구하지 않을 채 은밀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을 엄마 마음대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냐며 따지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배려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최근에 <온 우주가 너를 사랑해>를 출간한 김수영 작가는 인스타에 아이의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아이의 초상권을 침해할 수 없다며 옆모습이나 뒷모습만 간혹 올린다. 처음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사진을 일상으로 공유하고 있는데(프로필 사진이 아이들 얼굴인 경우가 많고, 지금 내 프로필도 아이들 사진이다.) 초상권 운운하는 모습에 공격받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그녀는 많은 경험이 있었기에 아이의 프라이버시에도 민감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100명도 넘지 않는 인스타 친구를 둔 일반인인 나는 내 사진이 어디에 쓰이는 경우도 겪어 보지 않았고, 초상권을 침해받은 경험도 저작권 분쟁에 휘말린 경험도 없다. 나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것도 그리 민감하게 굴지 않아보았으니 아이의 프라이버시라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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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부터 '한달'의 도움을 받아 첫째의 유튜브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이의 모습을 누구든 볼 수 있다는 경계심 가득한 시선보다는 아이에게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래 봐야 엄마 아빠와 가까운 지인들이 봐줄 것이고(아직 학교에서 사귄 친구가 없다) 친인척들이 볼 것이다. 콘셉트도 정하지 못한 브이로그에 가까운 채널이 되겠지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의 유튜브 버전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세상에 당당하게 나아가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시작을 마음먹었다.
디지털 이민자인 우리가 어린 시절의 사진을 뒤적이며 아이들이게 '엄마는 어릴 때 말이야~'하는 것과 다르게 아이들은 유튜브 채널로 기록을 보관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만들어 둔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서 부부가 '저때는 저랬네.'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느 쪽이건 지금까지 없었던 또 하나의 유산을 만드는 일이 되리라는 점에는 이견이 생기지 않을 듯하다. 다만 처음이니만큼 일상의 공개 수준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 아이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 이리라.
찍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면 되던 사진과는 다르게 영상을 제작하고 남기는 일은 나도 아이도 처음이다. 다만 동영상을 핸드폰에만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공개 개정에 올린다는 정도로 가볍게만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유산'이라는 개념으로 보니 고민의 깊이가 조금 다르기도 하다. 첫 영상을 찍기 전에 아이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 하리라.
부모가 되니 고민해야 할 것들이 더욱 많아졌다. 심지어 디지털 유산에 대한 고민 했어야 한다니. 새로운 유산인 만큼 무엇을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더듬더듬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같이 나아가 보아야겠다. 역시 부모 되기는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