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영원히

사진보다 영상인 시대

by 로지

한창 사진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사진들을 보면 당시의 나를 거의 완전히 읽을 수 있다. 사람 하나 찍히지 않은 황량한 풍경만을 어떻게 그리도 잘 잡아냈던지. 아름다울법한 노을도 최선을 다해 저물어가는 슬픔을 담고 있고, 떠오르는 태양도 외롭기 그지없이 찍어냈던 가히 초능력이라 불릴만한 재능을 뽐내던 시절이다.


어쩌면 사진은 지금의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픈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했었다. 영원한 것은 없는 세상에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는 하나의 방법이 바로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은 그 순간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게 되고,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가의 관점 역시 박히듯이 영원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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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ine watt on Unsplash




나는 영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영원히 사는 삶이라니.... 도깨비도 아니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계속해서 감내해야 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헤어날 수 없는 도깨비의 늪이다.)

이기적 일지 몰라도 나의 영생은 꿈꾸지 않지만 사랑하는 이들은 오래도록, 가능하면 내가 숨 쉬는 동안 곁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 나의 부모가, 나의 배우자가, 나의 아이들이, 나의 친구들이 말이다.


사실상 남편의 부재는 상상만으로도 감당이 안되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는 편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못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의 부재는 어찌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는 건 너무 편파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이성적이고 자아가 탄탄한 남편이니까.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 몫까지 아이들도 잘 키우고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조금은 안도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만 아직 어린아이들은 조금 더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자라는 동안 '엄마'로써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을 텐데,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텐데, 그런 쪽의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메우기 힘들 거라는 걱정은 된다.


사람은 언제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 이후가 어떤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또 다른 몫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 혹은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겪을 나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고 음반을 사모으던 때에 마리아 칼라스의 음반이 발매되었다. 월례행사처럼 음반 매장에 가서 CD를 사모으던 시절이었다. 칼라스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검색과정 한 번 거치지 않고 듣기 시작했다. 마치 흑백영화 시절에 칼라 티브이를 만난 느낌이었다. 기존에 듣던 오페라 아리아는 예쁘고 아름답기만을 추구한 느낌이었다면 칼라스의 노래는 조금 더 강렬한 힘이 넘쳤고 그녀만의 해석이 추가된 듯한 느낌이었다. (강조하지만 나는 클래식 무식자고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나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무척 좋았다. 결혼 전까지 운전 중 BGM은 마리아 칼라스가 절반을 차지했었다.


마리아 칼라스는 일시적 삶이라는 짐을 벗어던짐으로써, 전 세계 팬들의 마음속에 그녀의 존재와 공연, 목소리를 향한 그리움을 불어넣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장엄한 풍채를 갖춘 채 무대로 돌아와, 놀란 청중들에게 자신의 불멸성을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p.350


https://youtu.be/ieTsKYg1_Qo



마리아 칼라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음악은 여전히 삶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검색해보면 생전에 그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목소리가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고, 기술의 힘으로 음질은 날로 좋게 복원되고 있다. 원한다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비슷하겠지만 핸드폰을 열어보면 사진의 9할이 아이들이다. 어느 날 내가 세상에 없는 때가 왔을 때 아이들은 자신을 찍어준 사람이 엄마였다는 것으로 엄마의 흔적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사진이 흔해졌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24시간 관찰 예능을 찍는 연예인들이 한순간 지나가버릴 아이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줄 수 있어 가족 모두가 너무 감사하다고 하는 말에 완전히 공감하는 바이다. 누군가 그렇게 영상으로 우리의 일상을 남겨 편집까지 마친 후 차곡차곡 남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필자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예를 들면 아이들의 거의 반라인 상태로 생활을 한다던지,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던지)로 인해 생각만으로 그치긴 했지만 말이다.


유튜버가 꿈이라는 첫째와 채널을 하나 만들려고 한다. 구독자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운영자의 만족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지만 아이와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추억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제법 설레기도 하다. 내 눈에만(?) 예쁜 아이의 모습이 담길 예정이다.

다소 소극적인 아이가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 유튜브 시청을 막을 수 없다면 조금은 생산적인 방향으로 고민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은 욕심.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만 하는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이자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되리라는 기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결정이다.


과정은 조금 버겁도록 힘들지 모르겠지만 결과물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를. 마치 칼라스가 노래하는 모습이 영원히 남아 모두에게 감동을 전하듯, 지금의 과정이 가족에게 영원한 기쁨을 전할 수 있기를. 첫 발을 내딛는 지금이 두근거리는 아침이다.


*참고영상. 마리아 칼라스의 생전 공연

https://youtu.be/EseMHr6VE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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