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먹거리가 중요하긴 하지.
봄이 되어 높은 산에서 계곡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귀리와 보리를 파종하고 채소밭에 씨를 뿌렸다. 따뜻한 여름 햇살이 산꼭대기의 눈을 녹여 물이 흘러내리면 들판에 물을 대 풀을 키우고, 그 풀을 다발로 만들어 헛간에 쌓았다. 가을의 첫 태풍과 함께 바람이 선선해질 무렵이면 보리와 귀리를 수확해 곡물 창고에 넣고 짚단은 다발로 만들어 저장했다. 겨울이 되면 쌓아둔 건초로 소와 양과 염소를 먹였다. 겨울은 또 여름에 비축해 둔 채소와 가을에 만들어 둔 소시지를 맛볼 시간이기도 했다.
<영양의 비밀> p.217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문을 열고 나가 바람과 햇살의 기쁨을 느낀다. 뒷마당에는 추운 겨울을 버텨낸 시금치가 푸르게 자리 잡고 있고 뿌려둔 씨앗은 움을 띄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각종 채소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아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리라.
마당 한 켠에는 한창 뭔갈 쪼아대는 닭들이 보이고 담 너머에는 소도 있고 돼지도 있음을 안 보이지만 알고 있다. 저 너머 언덕 위를 지나면 과수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시원하게 냇가도 존재하는 곳에서 사는 꿈.
꿈이 왜 꿈인지 아는가? 오감 중 어느 것도 실제로 작동하는 것 없이 상상만으로 생각만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냥 행복하게만 볼 수 있어서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게 현실이 되면 엄청난 노력이 들어야 하고 힘이 들고 쉽지, 아니 어렵다는 거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전에 워밍업 한다는 마음으로 작년부터 시에서 운영하는 작은 텃밭을 일궜다. 잘 쳐줘야 1.5평 남짓되는 땅에 감자, 상추, 쑥갓, 부추, 비타민, 깻잎,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를 심었다. 작년 가을에는 처음으로 무 농사(?)를 지었다. 가늠이 안 돼서 한 밭 가득 심었더니 김치도 담고 깍두기도 담고 반찬으로도 먹고 국물용으로 쓰고도 아직 냉장고에 몇 개가 남아있을 정도로 수확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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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올해는 씨 뿌리고 키우다가 최근에 포기한 상태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계속 집에 있으니 어른들이 텃밭까지 가서 시간과 정성을 들일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는다. 작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 사람부터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더운 계절이 조금 지나고 나면 가을 상추랑 무, 당근은 다시 심어야지 마음먹으면서 자기 위안을 하고 있는 중이다.
태풍을 앞둔 상쾌한 가을날, 월동 준비를 하며 곡물을 수확하다 보면 나 자신이 계절에 맞춰 열심히 일하는 개미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영양의 비밀> p.218
인용하고 있는 내용은 저자가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작물을 키우고 동물과 공생하며 살던 때를 이야기한 것이다. 읽는 내내 속으로 '행복하겠다, 건강함을 느꼈겠다. 저런 게 사는 거지.' 연신 외쳐댔다. 현실은 집 근처 텃밭에 물 한 번 제때 못 줘서 다 죽여놓고 말이다.
흐린 기억 속에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가 남아있다.(내가 너무 어릴 때라 정말 기억이 드문드문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젊으셨던 시절에 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와 마을을 덮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멧돼지를 잡았고,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한쪽 엄지손가락을 잃으셨다. 뭉툭한 엄지손가락을 쓸면서 말씀하시다가 괜히 머쓱하셨던지 이어서 얼마나 큰 멧돼지였는지 온 마을 사람들이 같이 멧돼지 고기로 잔치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그때는 고기가 귀할 때라 지금처럼 살만 발라 먹는 게 아니었다며 살코기, 내장, 뼈 모두를 사용해서 굽고 끓이고 찌고 말린 이야기를 구전동화처럼 들려주셨던 기억도 조각조각 남아있다.
당시 나는 멧돼지를 온통 다 먹는 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속에 흠뻑 젖은 흥은 잊히지가 않는다. 사람들이 얼마나 신이 나 했는지, 며칠을 가마솥을 걸어놓고 축제를 벌이던 당시의 흥분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금은 그때 멧돼지 고기 맛 같은 걸 맛볼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도 하셨다. 옛날 옛날에 같은 이 이야기도 이제야 책을 읽다가 기억이 살아났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식욕과 기운이 솟아 우리 중 단 한 사람도 상태가 좋은 암컷 들소와 비교할 만한 고기는 어디에도 없다는 주장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런 양념이 필요 없었다. 그저 내키는 대로 끓이고 굽고 튀기면 그만이었으며, 빵이나 채소도 없이 오로지 그 고기만 먹었다. 제일 신기한 것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고기였다면 며칠 동안 줄기차게 그것만 먹고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영양의 비밀> p.234
외할아버지는 100세 가까이 사셨다. 돌아가시던 당시 내 나이가 겨우 스물이었으니 기억이 정확하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다. 평소 과묵하셨고 우리가 가도 크게 반기지도, 떠나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으셨지만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던 모습이 남아있는 것일까? 어쩌면 할아버지는 기억하고 계시는 제대로 된 먹거리들을 더 이상 맛보기 힘들어짐이 안타까워서 무거운 입을 열어 무언가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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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우리 조상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 간 땅에서 식물과 동물의 영양분을 섭취했다. 그들이 죽으면 이번에는 식물과 동물이 그들에게서 영양분을 가져갔다. 우리가 특정 음식을 유난히 선호한다는 사실은 - 또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는 사실은 -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대지가 얼마나 강력하게 얽혀 있는지 보여 준다. 같은 대지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세포와 장기는 테루아르를 통해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영양의 비밀> p.240
사실 이런 책을 읽으면 밥상이 건강해지는 만큼 엄마가 많이 지친다. 건강한 먹거리일수록 손이 더 많이 간다. 키워서 먹는 거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구입해서 먹는 것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일주일에 한 번 보던 장보기도 세 번 이상으로 늘려야 하고(그래야 신선한 야채 위주의 식단이 가능하다) 조리과정 이전에 작업시간도 늘어난다. 작은 나물 반찬 한 접시를 만들려면 씻고 다듬는 시간이 먹는 시간의 몇 배가 걸리니 말이다. 바쁘고 할 일 많은 시기에 나물을 하나하나 다듬고 있다 보면 어느새 급해진 마음에 눈은 시간을 확인하고 급기야 손질을 멈추고 만다. 결국 나물은 제대로 다듬어지지 못한 채 다시 냉장고로, 그대로 시간이 흐르면 식탁에 올라가지도 못한 채 음식물 쓰레기가 되고 마는 경우도 생긴다. 이토록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만 한다는 걸 받아먹기만 하던 시절에는 정말 몰랐다.
음식을 장만하는 데에만 정성, 시간이 드는 게 아니다. 다 익혀 유통을 하는 토마토를 사려면 검색부터 구입까지 꽤나 정성을 들여야만 가능하다. 공급물량에 한계가 있으니 판매 공지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잽싸게 주문하는 신속함도 갖춰야 한다.
방목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항생제, 사료를 먹이지 않고 건초 등 자연물만 먹인 소, 돼지, 닭을 찾는 것은 더 힘들다. 간혹 질 좋은 육류를 구입할 기회가 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구입 버튼을 눌러야 한다. 다음 달에 날아올지도 모르는 엄청난 금액의 카드값을 고민하다 보면 '품절'이라는 단어를 만나고 말 것이니 말이다.
조금 더 건강한 먹거리, 자연 친화적 먹거리를 찾다 보면 돈이 많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친환경 토종 농축산물로만 밥상을 차리면 일반 마트에서 장보는 것 대비 2~3배 정도의 비용이 더 든다. 찾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가격이 결코 만만치만은 않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한 달 동안 먹었던 고기 값으로 소는 제외하고 돼지, 닭만 먹어도 한 달에 한두 번 먹을 수 있을까 싶다. 절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키워서 먹을 수도, 늘 좋은 먹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을 수 만도 없어서 선택한 것이 꾸러미였다. 찾아보면 다양한 꾸러미가 있다. 그중 내가 받아먹었던 꾸러미는 매달 정기적으로 약속한 비용을 지불하고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으로 선택해서 꾸러미를 받는다. 꾸러미 물품은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늘 바뀐다. 아무래도 여름철에는 훨씬 풍성한 꾸러미가 온다.
꾸러미의 장점은 획일화된 장보기에서 벗어나 계절에 맞는 다양한 채소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살림을 처음 하던 때에 받았던 각종 산나물, 생취나물, 비름나물 등은 잊을 수가 없다. 손질법을 몰라 인터넷을 뒤져가며 밤새 손질하기도 여러 번. 그렇게 스스로는 절대 구입하지 않을 법한 야채들도 식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자연친화적으로 재배된 것이라 시장에서 구입하는 채소와는 비교가 안 되는 향과 맛을 지니고 있다. 꾸러미 발송 시기에 가장 적절하게 자라고 익은 과채가 담겨서 이틀 안에 배송이 된다.
더불어 채소가 자라난 과정을 온라인으로 함께 보았기 때문에 키워서 보내주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해서도 그냥 썩혀서 버릴 수가 없다. 엄마가 세 배로 부지런해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반면에 이것도 역시 비용이 꽤나 든다. 꾸러미를 받던 당시를 돌아보면 한 달에 한 번 큰 꾸러미(쌀과 고기가 포함된)를 받고 지불한 금액이 한 달 다섯 식구의 식비로 책정한 금액의 20%에 육박했다. 물론 내가 키우고 가꾸는 시간과 정성을 대신해 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 또한 기꺼이 지불할 정도이긴 하지만 부담이 안 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또한 과채가 꽤나 볼 품이 없고 원치 않는 생물(벌레 그리고 벌레 자꾸 봐도 이름도 모르는 벌레...) 들이 함께 온다는 것도 적응이 필요한 점 중 하나다.
가뭄이 길어지거나 장마가 길어지면 작물 상태가 더욱 나빠진다. 일정 비용을 이미 지불했으나 보낼 채소가 없으니 묵혀둔 묵나물, 쌀, 고기 등이 더 얹혀 발송되었다. 원치 않게 빈곤해진 꾸러미지만 그 또한 함께 상생하는 방법이라 쓰린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셋째가 생기고 이사를 앞두면서 꾸러미를 중단했다. 입덧도 심했고 무엇보다 체력이 달려 매달 오는 꾸러미를 고스란히 버리는 경우가 늘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시작해야지 했던 것이 벌써 이 년이나 흘렀다. 그간은 특별히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환경이 중요한 가 보다.
건강 관련 책을 읽고 먹거리의 중요성을 다시 깨우친다. 관련 다큐를 보면서 현실에서 타협할 수 있는 자신의 기준선을 다시 재정비한다. 밀가루, 설탕 음료, 인스턴트를 줄이는 대신 조금 더 번거롭더라도 내 손으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글을 쓰다 말고 자리를 비웠다. 생각났을 때 하지 않으면 내일 먹을 수가 없다. 분주하게 냉동실을 뒤졌다. 사놓은 엿기름을 미지근한 물에 담가 치대 준다. 뽀얗다 못해 탁해질 정도로 치댄 엿기름 물을 30분 정도 불려준다. 가능하면 새로 밥을 해서 식힌 후 만들면 좋겠지만 시간 단축을 위해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밥들을 꺼냈다. (식혜는 '찬 밥 가득'이 핵심이다.) 불려진 엿기름 물과 해동한 찬 밥, 정량의 물을 함께 보온 밥솥에 넣는다. 설탕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단 맛을 책임질 홍시도 준비한다. 이렇게 내일 아침까지 보온을 하고 꺼내어 한번 끓여주면 끝. 달지 않은 엄마표 식혜가 완성이 된다. 더워진 날씨에 매번 얼음물만 마시다 시원한 식혜를 대신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운이 도는 듯하다. 부디 맛있게 익어져 내일 만나기를. 이렇게 오늘도 부지런을 떨어보는 직업 엄마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