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judice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의 제목에서 사용된 것처럼 “편견”이라는 의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prejudice는 법률용어로는
n. damage or detriment to one’s legal rights or claims
의 의미를 가진다. 즉, 타인의 법적 권리에 가하는 해 또는 침해를 말한다. 조약과 같은 국제법 문서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 소송절차 등 다양한 법률 맥락에서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언제나 부정적인 뜻으로 해석되고, 보통 한국어로는 “-을/를 저해하다” 또는 “-을/를 침해하다”로 옮겨진다. 조약에서 사용되는 예를 살펴보면,
Without prejudice to other means of prudential regulation of cross-border trade in financial services, a Party may require the registration of cross-border financial service suppliers of the other Party and of financial instruments.
(번역: 당사국은 국경 간 금융서비스 무역에 대한 그 밖의 건전성 규제 수단을 저해함이 없이, 다른 쪽 당사국의 국경 간 금융서비스 공급자 및 금융상품에 대하여 등록을 요구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처럼
without prejudice to
의 형태로 종종 사용이 되고, 그 뒤에 나오는 무언가를 저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위의 예문에서는 한쪽 당사국이 다른 당사국의 국경 간 금융서비스 공급자와 금융상품의 등록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규정하면서, 그러한 무역에 대한 다른 건전성 규제 수단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아래의 문장은 계약서에서 사용된 예시이다.
Any termination of this Agreement will be without prejudice to any rights and obligations of the Parties hereto arising or existing up to the effective date of such termination.
이 계약서가 종료되더라도 그러한 종료의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는 이 계약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하면 계약서를 종료하기로 양 당사자가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그 즉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종료가 되도록, 즉 다시 말해 종료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정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양 당사자가 이 계약서를 종료하기로 결정한 시점부터 실제 종료가 일어나는 시점 사이의 기간 동안에는 이 계약서 상의 양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가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미국법상의 국내 소송절차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로 사용된다.
without prejudice rule
이라는 특권(privilege)이 그것인데,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유지 특권인 Attorney-Client Privilege처럼 without prejudice rule 도 유사한 특권의 한 종류이다.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당사자들 간에 서로 합의를 하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되고 이 단계에서 많은 대화(communications)가 오고 가기 마련인데, 만일 합의에 이르지 못해 소송을 하게 될 경우, 이 합의를 시도하던 단계에서 주고받았던 대화의 내용이 혹시라도 소송절차에서 해당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이용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사자가 자신이 입을지도 모를 불이익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다른 당사자와 자유롭게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할 수 있게 되면 결과적으로 법원에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수가 줄어들게 될 것을 염두에 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내 소송절차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같지만 위에서 말한 특권과는 또 다른 의미로 prejudice 가 쓰이기도 한다. 최근 할리우드 배우 기네스 팰트로의 법정패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사진출처: W Korea]
기네스 팰트로가 2016년 유타주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던 중 테리 샌더슨이라는 한 남성과 충돌했는데, 테리 샌더슨은 당시 기네스팰트로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는 바람에 자신이 뇌진탕과 갈비뼈 손상 등의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며 약 4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테리 샌더슨의 주장을 기각했지만, 테리 샌더슨은 계속해서 민사소송을 이어 나갔고, 기네스 팰트로는 상징적인 금액인 1달러를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결국 유타주 배심원들은 테리 샌더슨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다는 평결을 내렸다. 기네스 팰트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네스 팰트로가 제출한 답변서 중 청구이유(Prayer for Relief) 부분에 prejudice 가 쓰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네스 팰트로는 원고의 주장을 기각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하면서
dismiss with prejudice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먼저, dismiss는
vb. to terminate (an action or claim) without further hearing
즉, 더 심리하지 않고 소송이나 주장을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 뒤에 without prejudice 가 붙느냐 아니면 with prejudice 가 붙느냐에 따라 원고가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dismiss without prejudice
는 원고의 주장을 기각하되 원고가 정해진 기간 내에 소송을 다시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prejudice 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는데, 여기서는 앞에 without이 붙어 원고의 재소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dismiss with prejudice
는 원고가 소송을 다시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되니 재판부가 이렇게 결정하면 원고는 동일한 주장으로 다시 소송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사건에서 기네스 팰트로는 원고 테리 샌더슨이 재소 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