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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Apr 24. 2020

'소풍'이란 말에는 참기름 향이 나지

Glow 11번째 주제 - 소풍

 그런 기억이 있다.

설렘에 잠은 쉬이 오질 않고 오래도록 텅 빈 천장을 보고 눈을 꿈뻑이다 나도 모를 새에 스르륵.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녘이다. 여섯 시쯤 됐으려나. 고소한 참기름 향이 방안까지 은근하게 풍겨온다. 얼른 남은 잠을 털어내고 몸을 일으킨다. 문틈 새로 흘러드는 불빛이 보인다. 잠든 언니들을 뒤로하고 문을 향해 조용히 기어가 문고리를 당긴다. 달칵.

 일순간 밝아진 조명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조심스레 끔뻑이다 보면 이내 눈 앞의 풍경이 선명해진다.


“일어났어? 이런 날엔 안 깨워도 빨리도 일어나네.”


 오색 재료를 앞에 두고 분주히 김밥을 말고 계신 어머니가 보인다. 어쩐지 너도나도 익숙한 법한 이 기억은 그래, 소풍 가는 날 아침 풍경이다.






 음. 누구에게나 그런 게 있잖은가, 특정 단어가 가져다주는 기분이랄까, 추억이랄까.

 소풍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면 나는 벌써부터 어디선가 은근히 풍겨오는 참기름 향을 맡는다.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문고리를 열면 내가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김밥으로 새벽을 맞는, 평소와 조금 다른 그 날은 내게 늘 특별한 선물 같았다.

 소풍 가는 날 아침의 설렘과 코 끝 알싸한 새벽 내음과 세모지게 쌓아 올린 까만 김밥 무리와 못 말린단 듯 웃고 있는 엄마의 미소까지, 유년 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소풍이란 단어에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겠지. 내로라하는 잠만보가 어떻게 소풍 가는 날만 되면 새벽같이 눈이 번쩍번쩍 떠졌는지는 알 법하다.



 추억을 곱씹다 보니 문득 소풍이 가고 싶어 졌다.

소풍날이 되면 나는 추억을 꼭꼭 눌러 담은 김밥을 준비해야겠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도 참기름 향이 폴폴 풍기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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