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

by 최다함


고용센터에서 알선해 준 몇 군데 이력서를 냈으나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어 폰으로 오는 알림에 신경을 쓰며, 서평단 카페를 통하여 출판사로부터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황금종이》를 제공받아 읽고 서평을 썼다. 책을 공짜로 볼 수 있어 좋으나, 그 대가로 기한 내에 서평을 써야 하는 것은 숙제 같다.



서평단을 통해 서평을 쓰는 모든 책의 논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나랑 같은 생각의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와 다른 입장의 저자를 까려고 읽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나랑 생각의 결은 다르지만 어떤 사람인가 궁금한 작가가 있고 어떤 작품인지 궁금한 작품이 있다.


내돈내산이 아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쓰는 서평단 서평에서 작가의 생각과 작품의 내용이 나와 다르다 하여 비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주례사 비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을 읽게 된 동기나 책의 주제에 관한 문제의식을 쓰고, 작가를 소개하고,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내 생각을 말하며 정리한다.



지난 토요일 예스24에서 책 한 권을 샀다. 나도 옛날에는 책을 많이 사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에 흔치 않게 내돈내산으로 구입했다. 토요일에 구매하니 일요일에 바로 왔다.


현재 가장 핫한 영화번역가 황석희의 《번역: 황석희》란 책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황석희가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였다. 과가 한 학년에 30명 되는 작은 과라 과동기면 다 친구였다. 지금은 가 닿을 수 없는 옛 친구다.


이번 주에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서 밀리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옛 친구가 쓴 책이라 질렀다.


나와 황석희 우리의 학과는 영어교육과였다. 단대가 사범대학이었다. 지금은 그런 게 있는 줄 모르지만 그때 대학엔 농촌봉사활동이라고 농활이 있었다. 우리 사범대는 교육봉사활동이라고 교활이 있었다. 신입생 때였는데 같은 과 같은 학번 중 우리 둘이 참여했다.


교활이란 게 농촌 마을에 가서 해가 뜨거울 때는 동네 애들과 교육적으로 놀고 해가 없을 때는 농사 일손을 도왔다. 보통 농활을 매일 밤 술을 마시는데, 교활은 교육 활동이라 알코올이 금지였다. 마지막날 밤 마을 잔치를 하며 술을 마셨다. 나는 맥주 두 세 병을 마셔 알딸딸한 상태에서 소주 한 병 병나발 불고 쓰러졌다.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같은 주사를 했다고,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고 떨어져도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황석희는 그날의 나를 보았다.



과동기끼리 노래방에 간 기억이 있는데. 황석희는 대학 음악 동아리 멤버이기도 했고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했다. 황석희 앞에서 윤종신의 《배웅》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대학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겉돌았던 나는, 과동기 선후배들과 많은 추억을 공유하진 못한다. 황석희에 대한 추석은 그 정도다.


황석희가 옛 친구이고 지금 친구는 아닌 것은, 손절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만은 아니다. 황석희는 저 앞에 있는 인생이 되었고, 나는 저 뒤에 뒤쳐진 인생이 되었다.


책 속의 지금 황석희는 집의 작업실에 틀어 박혀 번역만 하며 산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였던 대학시절 황석희는 아닌 듯하다.


황석희의 책을 읽으며 석희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구나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었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가정환경이 좋았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부부교사 부모님 밑에서 살만 했다. 또 훌륭한 부모님 밑에 사랑받고 자랐다. 내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사랑하던 첫사랑 소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황석희를 포함하여 과동기들이 2학년이 되던 해 나는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지금은 멀어진 옛 친구의 책이 출간된 것을 보고 샀다. 나도 책을 내면 내 옛 친구들이 보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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