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브런치에는 절망이 있다'라는 제목을 정해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말이 마중물이 되어 내 안에서 글 제목 하나와 더불어 글감 하나를 끌어냈다.
검색을 해보니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정지우 작가의 사회비평 에세이집의 제목이다. 나는 정지우 작가를 모른다. 이 책도 모른다. 검색 결과 정지우 작가의 책은 인스타그램에 관한 책은 아니다. 87년생 작가의 사회비평 담론집이고, 한 꼭지의 글 제목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일 뿐이다.
나 또한 인스타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작가의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 작가로서 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인스타에는 예쁜 사람이 예쁜 풍경에서 예쁜 옷을 입고 예쁜 것을 먹는다. 모든 인스타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걸 꼭 삐딱하게 볼 필요도 없지만, 대체로 인스타가 그렇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다 그런 것도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브런치에는 절망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브런치는 그렇다. 인스타는 SNS요 브런치는 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절망은 독자에게는 희망이 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