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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최다함


조울증 원인이 뭐야?

장안의 화제인 ChatGPT에게 질문을 던졌다. ChatGPT의 요약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울증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 생화학적 요인, 환경적 요인, 심리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빙고! 딩동댕! 2000년 봄, 스무 살 군대에서 처음 발병하고 조울증과 24년을 함께 한 내가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조울증의 원인에 대하여 ChatGPT는 어떤 답변을 내놓는지 호기심에 던져보는 질문이다. ChatGPT는 질문할 때마다 대동소이한 다른 답들을 하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답을 얻어 스크린 캡처로 박제시켜 놓기 위해서는, 정답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명확히 밝혀진 원인은 없으나, 몇몇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현재 정신의학계의 잠정적 결론을 처음 마주했을 때, 모르면 모르고 알면 아는 것이지, 모르는데 안다는 말은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조울증에 원인에 대하여, 주요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현재 정신의학계의 정설을, 스무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려 이십 년 가까이 방황한 24년 차 조울러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튜닝하여 이해한다.


(유전적) 유전적으로 조울증에 취약한 사람이
(환경적, 심리적)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이상의 스트레스를 고강도로 장기간 받으면
(생화학적)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게 되어
조울증이 발병한다.


일반적인 조울증 발병의 원인 말고, 나의 개인적인 조울증 원인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원래 조울증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원래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지도 않았다.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과, 군대에서의 정신적인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조울증에 걸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동아리 부회장이 되었다. 회장 소녀가 예뻤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울지 않는다. 인류애를 상실한 메마른 인간이 되었다. 타인의 불행을 기도하고, 누군가를 넘어뜨리기 위해 살지도 않는다. 그것도 귀찮은 일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 내가 날마다 울던 때가 있었다. 비에 젖어 살았다. 평생 할 지랄에도 총량이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 눈물에도 총량이 있어 그때 다 울어 눈물샘이 말라 붙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쩌다 울 때가 있기는 하다. 그 타이밍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 극장에서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보며 오열에 가깝게 울었다. 팬더가 엉덩이 흔들고 춤추며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면 되지, 어떤 사연이 있기에 쿵푸까지 배워 지구를 지켜야 할까?


나의 비극은 내가 사랑하는 소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바로 접는 게 답이다.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냐는 논리는 축구에 적용해야지 사랑에 적용하면 안 된다. 깨끗이 마음을 정리하고, 공부나 일 등 내 삶에 충실한 체하며, 나를 바라보는 예쁜 여자가 있는지 시선을 들키지 않고 돌아보아야 했다. 그게 필요 없는 지금은 그게 되는 데 그게 필요했던 그때는 그게 안 되었다. 소녀를 향하여 뛰기 시작한 내 심장을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서서히 내 정신이 고장 나고 있었다. 정신은 뇌에 있다. 뇌가 고장 나고 있었다.


빠른 80년 생이라 79년 생과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1년 재수를 하고 99학번이었지만, 제 나이에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같은 과 다른 동기들이 보통 군대에 갔던 2학년 때 갔어야 했다. 병무청에 조기입대를 신청하여, 1학년 마치고 군대에 갔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재수를 하고, 대학에 가고, 그립고 그리운 소녀를 볼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고2 동아리 임원을 할 때 1년만 매일 같이 볼 수 있었던 것이지, 그때는 남녀공학이라도 남녀각반이던 시절이라, 고3이 되어서는 같은 층에 있으면서도 거의 볼 일이 없기는 했다. 군대에 간다고 하면 카페에서 커피 한 잔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착각이었다. 소녀가 보고 싶었다.


심리적으로 무너질 대로 무너졌을 때 군대에 갔다. 내가 입대한 강원도 양구의 사단 훈련소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추운 1월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배치받은 자대는 매일 완전군장을 하고 양구의 험준산령을 타 다녔다. 평생 운동 한 번 안 하고 살아온 나였다. 그런 데다가 다들 신경은 날카로웠다. 고문관이라고도 불리는 관심사병이 되었다. 군입대 3개월 만에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첫사랑에 성공했거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군대에 갔었더라면, 둘다가 아닌 둘 중 하나만이었더라면, 군대 마치고 내 삶을 살며 다른 여자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조울증으로 이십 년을 방황했다. 지금은 조울증을 극복하고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잘 살고 있다. 조울증을 극복했다는 것이 약을 끊고 완치가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울증의 세계에 그런 달달한 것은 없다. 2주에 한 번 병원에 가고, 매일 몇 알의 약을 먹으며, 별 일 없이 산다.


조울증의 끝이 보이지 않던 긴 터널을 지나며, 책 읽고, 글 쓰고, 유튜브 하고, 강연 다니는,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소설 시 시나리오는 절대 안 써야지 하는 주의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써 온 그리고 앞으로 주로 쓸 장르는 에세이다. 이미 에세이의 시대가 왔고, 이제 그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K 에세이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베스트셀러 에세이스트를 꿈꾼다.


이 책은 나의 첫 번째 책이다. <다함스토리> 또는 <사랑 때문에 조울증>이라는 같은 제목과 같은 내용으로 아주 오래 써왔다. 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렸고, 사랑 때문에 조울증을 극복한, 사랑 에세이를 쓰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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