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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an 30. 2021

엄마가 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아빠가 되는 것도 '조금은' 힘들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다. 2주에 한 번씩 봉담에 있는 고려힐링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약을 타러 간다. 조울증이 나를 찾아온 지 스물 하고도 한 해가 되어가는 조울이의 일상이다. 물론, 지금은 내 조울증 증상에 맞는 약과 약물농도를 찾아 매일 꾸준히 약을 먹고, 좋은 아내를 만나 사랑 안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가지고 살면서, 조울증 증세는 완전히 사라졌다. 고혈압 환자가 평생 혈압약 먹으면서 관리하면 괜찮은 것처럼, 조울증 환자도 평생 약 먹으면서 관리하면 괜찮다.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드라이로 말리고,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 마스크를 썼다. 언제부터인가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길을 나서면 범죄자 취급을 받는 사회가 되었다. 전 세계인이 백신을 다 맞고 집단면역이 되어도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도 해 본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때 가봐야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내가 지갑에 천 원짜리 3장 3천 원을 넣어 준다.


에미마, 내일 오빠 병원에 갈 때 500원짜리 몇 개만 잊어버리지 말고 챙겨줘.

왜요?

병원에서 돌아오는 병원 근처 거기 버스정류장 있잖아?
거기 오뎅이 엄청 맛있는데 싸. 한 개에 500원이야.
카드도 받는데 500원짜리 오뎅 먹으면서 카드 쓰기가 그렇더라고.

어젯밤 아내 에미마 배에 손을 대고 뱃속의 아가 사랑이를 위해 기도한 후, 불을 끄고 내 팔에 아내가 팔 베개를 하면서 잠에 들면서 아내와 나눈 대화이다. 밤에 불을 끄고 아침에 눈을 뜰 때까지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혼 후 며칠은 그렇게 해보았는데, 팔이 저려오고 밤에 잠자다가 때때로 온몸을 긁어대야 해서 그렇게는 못한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하더만 영화는 영화고 현실 부부의 삶은 현실 부부의 삶이다. 불을 끄고 팔 베개를 하고 짧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5분 정도 아무 말 없이 아내는 팔베개를 하고 잠에 빠질 준비를 한다. 잠에 들기 전에 아내는 오른쪽으로 돌아 눕고, 나는 왼쪽으로 돌아 눕는다. 가장 자기 편한 자세로 돌아 눕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대개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엎치락뒤치락 자는 자세를 수도 없이 바꾼다고 한다. 잠자기 편한 자세로 서로 돌아누웠다가도 새벽에 서로가 본인도 모르게 다시 포개지기도 한다. 어젯밤 잠에 들기 전 나는 아내에게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먹을 오뎅을 위해서 5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챙겨 달라고 했다. 추운 겨울날에 외출할 때는 오뎅이 최고이다.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나누고 약을 타고 병원을 나와서 오뎅 집에 가서 500원짜리 오뎅 4개를 시켰다. 노점상은 아니고, 김종구 부산어묵이라는 브랜드의 샵이 있는 오뎅집이었다. 오뎅을 주로 팔고, 떡볶이도 팔고, 순대도 판다. '김종구 부산어묵'이라는 오뎅집 상호를 기억하는 것은, 사장님이 직접 녹음한 것인지 '김종구 부산어묵'이라는 가사만 반복되는 노래를 짧은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틀어 놓는다. 재미있는 마케팅 전략이다. 오뎅을 먹다가 버스를 놓쳤다. 집에서 병원 갈 때는 여러 노선의 버스가 가서 인터벌이 없는데, 여러 노선의 버스가 병원 근처에서는 정류장을 다른 길로 나누어 정차를 해서, 병원에서 집에 올 때는 차 한 대 놓지면 한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오뎅을 먹고 버스를 놓쳐 3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탔다. 버스를 막 탔는데 아내 에미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야?

나 지금 바로 버스에 탔어. 버스가 늦게 와서 지금 출발하네.

병원에서 아까 전에 나왔는데 지금 버스를 타? 뭐 먹느라 늦었죠?

내가 병원에 나와서 어디서 뭘 먹었는지 아내는 귀신 같이 안다. 내 통장에는 돈이 없고, 모두 아내 통장에 넣어 주어, 아내 카드로 긁어 계산을 하는데, 병원에서 몇 시 몇 분에 계산을 하고 로그아웃을 했는지 아내는 안다. 실제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가 드문드문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뭐를 먹고 오느라고 버스를 놓쳐 늦게 오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내는 병원에서 카드를 긁은 시간을 폰으로 확인해 보고, 내가 어디서 뭐 맛있는 거 먹고 오나 합리적인 추정을 한다.


오빠, 올 때 뿌니마 가서 전화해요.

뿌니마는 수원역 근처의 네팔 식당이다. 수원역 근처에는 네팔 식당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주로 가는 식당은 뿌니마가 아니라 수엠부이다. 아내가 입덧을 하면서 대체로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한다. 눈으로는 먹고 싶은데, 구토가 나와서 힘들어서 먹기가 어렵다. 아내의 입덧이 시작되면서 대체로 간단하게 먹는데, 아내가 정말 먹고 싶을 때는 뭐 먹고 싶어 뭐 사와라고 말한다. 그러면 가서 사다 준다. 지난번에는 육개장을 사다 주었고, 이번에는 수원역에 뿌니마 식당에 가서 아내가 원하는 네팔 음식을 사다 주었다. 아내는 틱톡으로 많은 네팔 팬도 가지고 있어서, 길거리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가끔 있는 틱톡 스타인데, 아내는 틱톡에서 누가 먹고 있는 그 네팔 음식이 먹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뿌니마에 가서 사장님에게 내 전화를 주고 아내가 주문하게 해달라고 했다. 우리의 당골 네팔식당인 수엠부 대신 뿌니마에 간 것은, 입덧인 아내가 먹고 싶은 특정 네팔 음식이 뿌니마에서 더 맛있었다는 것 같았다.


아내가 입덧만 좋아지고 임신 초기가 지나 안정기가 되면, 비싼 네팔 식당에 자주 갈 수는 없고, 수원역 인근의 네팔 식자재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 와서 아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된다. 아내는 요리를 정말 잘한다. 지금은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를 해서 먹을 수 없지만 말이다.


오빠, 오늘 네팔 음식 너무 맛있어요. 나 이거 토하더라도 맛있게 먹고 토할 거예요.

지금은 아내가 많이 힘들 때, 전기밥솥에 밥 안치고, 미역국 끓여 주고, 김치볶음밥 해주고, 설거지해주고, 세탁기 돌려서 널어 주고, 청소기 돌려 걸레질해주고, 쓰레기 분리수거해주고 그 정도만 도와준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내가 엄청 많이 도와주는 것처럼 말한 완전 사기인데, 아내가 너무 힘들어 오빤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렇게 혼자 재미있게 놀고 혼자 그렇게 맛있게 먹고 그래요 하면 절반은 아내를 사랑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절반은 마지못해서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더 잘해줘야지 생각은 하는데,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한 번에 변하지는 않더라. 딱 하루 완전히 좋은 남편과 아빠로 변했다가 다시 돌아오더라. 엄마가 되는 것은 정말 곁에서 지켜보아도 너무 힘든 일이지만,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빠가 되는 것도 조금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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