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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an 29. 2021

아빠는 새 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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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에미마의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내가 아내의 큰아들 같은 때가 많았다. 아기가 생긴 후에는 아내가 아기가 되었다. 아기가 생겨서라기보다 지금이 입덧을 심하게 하는 시기라, 먹으면 먹는 대로 토하고 힘이 없고 아파서, 아내도 뱃속의 아기를 품은 아기가 되었다.


남편인 내가 아빠처럼 다 알아서 아내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아기가 생긴 것은 깨달은 딱 하루 동안은 좋은 아빠 모드로 저절로 바뀌었지만, 그 다음날 바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물론 아기와 아내를 위해 가능한 잘해주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잘 변하지 않으며, 평소 아내가 집에서 하던 역할이지만 입덧으로 지금은 할 수 없는 역할을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척척 해주어야 되는데, 그게 또 쉽지 많은 않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바일과 컴퓨터 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청소기 돌려주고 방 닦아 주고, 세탁기 돌려 빨래 널어 주고, 유튜브 보고 공부해서 간단하게나마 미역국이나 북엇국 끓여 주고, 아내가 누워 있는 침대에서 뱃속의 아기와 대화를 나누어 주고 많은 시간을 보내 주면 된다. 일상 현실 속의 사랑이란 것이 그러한 것이다.


입덧한 아내 앞에 두고 맛있는 반찬을 아내 입에 먼저 넣어 주는 것도 잃어버리고 본능적으로 내 입에 마구 마구 집어넣을 때 아내가 뿔 난다. 아내 에미마는 건강하게 아기를 낳기 위해 입덧의 고통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입덧으로 먹는 것을 다 토하고 힘이 없고 고통스러우니까, 남편인 내가 그 고통을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아 종종 노여워한다.


아기가 생기면서 나 또한 아내를 내 딴에는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하지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아내와 아기만 온전히 생각해 주지는 못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중에서 -


아내의 뱃속 아기 사랑이가 처음 우리에게 왔을 때, 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집에서 북디자인을 하고 있었지만, 아내가 보기에 집에서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나는 대체로 아내와 아기와 함께하기보다 나 혼자 시간을 보냈었던 것처럼 보였었던 것 같다. 거실에서 일을 하거나, 논산에 내려가 계시는 부모님 방 침대에서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ebook을 보거나 글을 쓰면서 말이다. 그런 나의 활동이 내 입장에서 마냥 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 당장 돈이 되거나 안 되거나, 나는 내가 원래 쭉 해왔던 일을 하면 같은 삶을 일관 되게 살고 있는데 말이다. 물론 아내가 부르면 모든 것을 놓고 아내에게 달려갈 자세를 하고 있지만, 아내 에미마가 때때로 나에게 섭섭해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입덧을 하여 몸이 아프니 신경은 더 뾰족해지고 쉽게 노여움을 타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전철을 타고 동생 사업장에 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동생이 필요한 날만 가서 쓰레기를 분리하여 버려 주고 청소해주는 일 정도를 하며 일당을 받았는데, 이제는 정식으로 계약서 쓰고 직원이 되어 동생 사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동생도 사업을 하면서 오랜 기간 아프고 방황하느라 일자리가 없는 형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직원 쓰지 않고 혼자 하느라 가끔 필요할 때만 가서 서로 도우며 지냈는데, 직원을 뽑게 되면서 동생 사업장의 디자이너로 정직원이 되어 계약서를 쓰고 오늘 처음 출근한다. 3개월 정도는 월 60시간 일하고 그 이후는 풀타임으로 일한다. 3개월 인턴의 개념은 아니고, 3개월 후에야 동생 사업이 내가 풀타임으로 일할만한 괘도에 올라갈 것 같다. 동생에게는 3개월 동안 보수는 월 60시간 기준으로 계약서대로 받지만, 일은 필요하면 풀타임으로 해도 된다고 말했다. 동생도 일이 번창하면 보수면에서도 형을 많이 챙겨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동생 부부가 우리 부부를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왔다. 아내 에미마도 오래 아팠던 내가 다른 사람 밑에서가 아니라 동생 사업장에서 일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오늘은 직원들끼리 만나 첫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시간이라서 늦은 출근을 한다. 그동안은 동생 1인 기업이었는데, 이제 직원 몇 명 있는 중소기업으로 되어 간다. 나에게는 중소기업이라기보다 가족기업으로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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