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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조울증

by 최다함

2000년 1월 11일 군대에 갔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입영일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군입대가 내 인생에 큰 의미인 것도, 내 기억력이 특별히 좋아서도 아니다. 단지 전날 1월 10일이 내 스무 살 생일이었다. 입대를 코 앞에 두고 여행을 떠났다, 입영전야였던 내 스무 살 생일 밤에 집에 들어왔다. 집에서는 내가 안 들어와 군대 안 가면 어쩌나 걱정했을 테지만. 그 시각에 돌아올 생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나로서는 가출이 아닌 여행이었다. 폰을 끄고 집에도 아무에게도 말없이 혼자 갔다 왔을 뿐이다. 군생활에 대한 걱정 두려움은 사실 1도 없었고, 다만 소녀가 사무치게 그리웠고, 마음을 달래러 갔다. 소녀가 있는 곳으로 소녀를 보러 간 것은 아니고, 소녀와 전혀 상관 없는 곳으로, 짧은 기간에 최대한 멀고 긴 동선으로 훌쩍 떠났다.


나는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했다.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하면, 3박 4일 대기하다 백이면 백 강원도로 떨어졌다. 지금은 보충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논산 훈련소로 가지 않는 신병은 보충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사단 훈련소로 입대한다. 나는 강원도 양구로 갔다. 양구의 겨울은 내가 경험한 압도적으로 추웠던 겨울이었다. 훈련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식판을 닦고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바로 식판이 얼어버렸다. 훈련소 생활은 힘들었지만 견딜만 했고, 같은 훈련병끼리 내무반 쓰며 서로 위로하며 지냈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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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렸고, 사랑 때문에 조울증을 극복했고, 사랑 에세이를 쓴다. 아내 에미마를 만났고, 아들 요한이의 아빠다. 쿠팡 물류센터에 나가며, 작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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