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내 나이 33살에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 학년이 한 학급뿐이 작은 학교였다. 과거에 지역 유지들이 살던 구도심 동네라 교사로서의 소명이나 승진보다는 봉투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 줄 서서 오던 학교였다는데, 도심 공동화로 구도심이 몰락하면서 퇴락한 학교다. 지금은 지역 문화적 상징성이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학교라 작지만 특색 있는 학교로 유지되고 있다.
말이 영어회화전문강사지, 하는 일은 영어 수업과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영어 선생님이었다. 학교에는 원어민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캐나다 국적의 원어민이었는데, 중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 간 교포라, 네이티브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잘할 뿐 아니라 정서도 한국인이었다. 수업 준비를 철저하게 하시기도 했지만, 수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대본처럼 써 두신 레슨플랜 노트를 가지고 계셨다. 한국어와 영어가 모국어처럼 능통했기 때문에, 영어 수업 준비와 수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현실 영어수업이 그게 다는 아니다. 공부할 마음이 없는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것이 교사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최소 주 18시간에서 최대 주 21시간의 수업을 해야 한다. 수업이 교사의 업무의 전부는 아니다. 수업 준비, 학생지도, 학교 행정업무 등이 있다. 주 40시간 근무하며 그중 21시간 수업을 해야 한다. 학교가 작아, 정규수업 시수 만으로 교사의 수업시수를 채울 수가 없어서, 방과후수업, 영어 수업이 없는 1학년 2학년의 창의체험활동 수업으로서의 영어활동, 심지어 유치원 영어놀이까지 들어갔다. 그렇게 하니 주 21시간 수업이 빽빽이 찼다.
일반 규모의 학교에서는 영어교사 1인이 한 학년에서 많아야 두 학년을 맡는다. 방과후수업이나 저학년 창의체험활동 유치원 영어놀이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같은 21시간 수업을 해도, 레슨플랜 하나를 만들어 놓고, 여러 반을 돌려쓴다. 한 번의 수업 준비로 같은 학년의 여러 반의 수업을 한다. 같은 수업시수라도 수업시수만큼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라, 레슨플랜 한 장으로 수업 하나 하면 끝이었다. 하루하루 닥치는 수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슨플랜을 짜고, PPT와 학습지를 만들며, 수업 준비를 했다. 시간에 쫓겨 레슨플랜을 라인 바이 라인으로 대본처럼 만들 여유는 없었다. A4 한 장에 대략의 개요만 짜 놓고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뿐 아니라 학교의 영어교과 행정을 맡아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원어민 선생님은 영어교사로서 유능한 분이셨지만 호랑이 선생님이었고, 나는 가능한 좋게 좋게 아이들과 영어로 노래하고 놀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통기타를 가져다 놓고, 기타 반주를 하며 영어로 아이들과 노래하는 것으로 동기 유발하며 수업을 시작하여, 그날의 교과 진도를 나갔다.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열심히 잘 시킨 교사는 아니었고, 영어로 아이들과 놀았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공부가 아니라 놀이다라는 교육철학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기타 치고 노래하며 영어로 노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마냥 논 것은 아니다. 그날의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론, 학교 교과서 진도라는 게 학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쉽고, 부모가 공부를 챙기지 못해 학습적으로 방치된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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