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같은 고등학교 같은 동아리 친구였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남녀공학은 남녀 각반이었다. 1반부터 5반은 남자반, 6반부터 10반은 여자반이었다. 나는 1반 소녀는 6반이었다. 6반은 아니었다. 10반도 아니었다. 7반 8반 9반 중 한 반이었는데, 어떤 반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인기가 있었던 반이 한 반 있었다. 왜 인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인기가 있었는지, 모른다. 남자 반은 그런 재미가 없는데, 여자 반은 학기말이 되면 각출해서 과자 파티하고 그런가 보다. 쉬는 시간에 반 파티를 했는데, 미션이 나를 데려오는 거였다나. 안 갔다. 지금이라면 갔을 것이다. 가서 노래 한 곡 부르고 올걸. 지금이라면 조항조의 <거짓말> 한 곡 부르고 왔겠지만, 당시 나의 캐릭터로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나 The Classic의 <마법의 성> 한 곡 부르고 올걸. 나를 사랑하지 않는 소녀를 잊고, 나를 부른 반에서 나를 사랑할 다른 소녀를 꼬실걸. 그때는 괜히 여자반 잘못 들어갔다가 혼쭐날 까봐 망설였다.
2학년 때 나는 동아리 부회장이 되었고, 소녀는 회장이 되었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났고, 짝사랑은 상사병이 되었고, 상사병은 스무 살 군대에서 조울증이 되었다. 조울증으로 방황하다 13년 반 만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대학 다닐 때 영어교육과 전공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다. 1년 3개월 정도 초등학교에서 영어 강사를 했다. 1학년 여선생이 예뻤다. 한 여자가 예쁠 때 조울증이 발병했고 재발했다. 순서적으로는 학교를 그만둔 후 시간차를 두고 조울증이 재발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1학년 여선생이 예뻐 조울증이 재발했고 직장을 그만둔 꼴이 되었다. 그즈음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비범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서는 내 나이에 걸맞은 성취를 이루며 사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다. 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려 실패한 인생 에세이를 써 작가로 성공하기로 했는데. 작가가 되기로 각성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아직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고. 지금 나는 쿠팡 물류센터에 계약직 사원으로 다니며, 브런치에 글을 쓰며 매년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있다.
그 사이 아무것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귀농도 하고, 회사도 다녀 보았다. 금방 그만두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생각보다 멀쩡했으며, 생각만큼 멀쩡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는데, 어떤 일이든 사회생활이 힘들다. 누구나 그런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나만이 그런 특수적인 상황이 있다. 그 근본에는 과거에도 현재도 내 안에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한 존재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현재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나의 존재가 나의 일과 일치될 수 있는 글 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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