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Oct 12. 2020

하나님사랑 소녀사랑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내와 강릉커피거리로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강릉역에서 ⓒ 최다함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한다고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나를 향해 심장이 뛸 때 멋지고 사랑스러울 때 사랑 받는다.


나의 이름은 최다함이다. 1) 다윗과 아브라함, 2) 최선을 다하라, 3) 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세 가지 뜻으로 부모님께서 이름을 지으셨다. 3대째 예수를 섬기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의 꿈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회장을 했고, 학교에서는 동아리 기독 학생반에서 부회장을 했다. 하나님 사랑이 꿈이던 소년의 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 사랑으로 바뀌었다. 소년은 기독 학생반 부회장이었고, 소녀는 기독 학생반 회장이었다.


비가 오면 청소시간에 집으로 뛰어가 우산을 가져다가 소녀의 반 문 앞에 가져다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소녀의 생일 때 선물하려고 1년 동안 노트에 다가 편지를 썼다가 전해 주지 못했다. 서울랜드 야영장으로 간 학교 캠프 때 소녀에게 밤에 춥지 말라고 겨울 잠바를 가져다주었다.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내와 강릉커피거리 안목해변 산책을 하며 ⓒ 최다함


상사병은 조울증을 낳고


사랑이 지속되는 데에는 마음이 중요하지만,
사랑이 시작하는 데에는 테크닉 기술이 필요로 하다.


다른 남녀 청춘들의 불타는 사랑이 그러하듯, 계산기를 두드려서 소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내 심장이 소녀를 향해 자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에게 소녀는 전부였지만, 소녀에게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도, 스스로 뛰기 시작한 심장박동을 멈추고 냉정을 되찾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고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다.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사랑처럼 저는 소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까치 오혜성이 팜므파탈 엄지를 사랑하여 인생을 파멸로 몰아간 만큼 소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나 만화에나 나올만한 사랑을 했다. 혼자의 마음속에 사랑을 간직한 지 1년 정도 지난 후에 고백을 하였는데, 소녀에게도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크리스천 뮤지션이 꿈이었던 소녀는 재수하면서 꿈이 바뀌었는지, 서울 소재 대학교의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학사-석사-박사를 스트레이트로 하여 지금은 대학교수가 되었다. 나는 재수를 하고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하였다. 1학년 입학하자마자 영자신문사와 테니스부 두 개의 동아리에 가입했지만, 학과 공부나 학과 생활이나 동아리 생활 등에 열심히 하지 못하고 혼자 겉돌았다. 타 학과 컴퓨터공학과 교양수업을 듣고, 컴퓨터 디자인 학원에 다니면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공부했다. 1년 동안 소녀에게 나의 마음을 고백하는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었지만, IT 기술의 시대적 한계와 나의 기술의 부족함으로 조잡한 홈페이지 하나를 만들어 홈페이지 주소를 소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냈다. 그 시기은 군대에 자원입대 신청을 하여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군대 간다고 하면 소녀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친구가 있던 소녀가 나를 만나주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고, 나는 멘붕상태로 군대에 입대하였다.


소녀를 향한 상사병과 군대에서의 정신적 괴롭힘으로 인해 조울증에 걸렸다. 소녀를 사랑했더라도 군대에서 정신적인 괴롭힘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까지 받지 않았더라면,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군대에서 정신적 괴롭힘을 받았을지라도, 소녀를 향한 사랑이 무서운 상사병이 되도록 깊어지기 전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더라면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첫사랑 소녀를 향한 짝사랑이 상사병이 되어 군대에서의 집단 괴롭힘의 스트레스와 만나 조울증가지 이르르게 되었다. 나와 부모님이 조울증에 대해 잘 알고 처음부터 매일매일 꾸준히 약을 먹으며 관리를 잘하였다면 방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찍 제대한 시간을 살려, 남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사병과 조울증으로 인생이 꼬였지만, 결론적으로 이로 인해 끝사랑 아내 에미마를 만나서 해피앤딩으로 끝났다.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1996년 봄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된 나의 첫사랑은 7년이 지나고 2003년 봄에야 끝이 났다. 1995년부터 알고는 지냈지만 그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사이였다, 1996년 딱 일 년 동안 동아리 회장과 부회장으로 가깝게 지냈다. 1997년에도 여전히 같은 학교를 같은 층에서 공부했지만, 고3이라서 거의 만나지 못했다. 졸업 이후 길에서 한 번 스친 것 외에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2003년이 되어서야 소녀가 나의 마음에서 떠나갔다. 첫사랑의 유효기간이 7년이었는지 어느 순간 소녀를 향한 마음이 떠나갔다.

작가의 이전글 실밥 풀고, 왕대추 따고, 글을 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