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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19. 2021

합정에서 책 한 권, 그리고 컵라면 하나

"코로나 때문에 여기서 라면 드시면 안 되는데요."

"저기 계산대에서 먹어도 된다고 하셔서 먹는데요."

"아, 네."


합정역 내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기 전, 라면을 먹게 되어 있는 취식대를 먼저 정탐을 했다. 전자레인지에 '취식금지'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배가 많이 고팠다.


"여기서 라면 먹어도 돼요?"

"아, 지금 시간에는 돼요."


보통의 편의점서는 아직 먹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규정이 까탈스러운 몇몇 점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계산대의 알바에게 먼저 물어본 것이다. 눈에 보이기에는 계산대의 알바가 매니저로 보이고, 나중에 와서 여기서 안 돼요 하는 알바가 새끼 알바 같다.


"오빠, 어디야?"

"신촌역. 지금 끝나서 좀 늦게 출발해. 배고픈데 뭐 먹고 가도 돼?"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고 와."



이미 신촌역 지하에 내려와 컵라면 먹으러 편의점을 찾아 다시 올라가기는 귀찮았다. 또한 오는 길에 바로 집으로 안 오고 나의 놀이터인 합정역 교보문고에 잠깐 들려 놀다가기로 했다. 교보문고 기프트카드에 충전해 놓은 게 있어 책 한 권을 살 수 있기도 했다.


원래 다른 책을 사려고 마음에 찜 해두었는데, 마침 매장에 없어 다른 책을 샀다. 사실, 책은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집에서 받아보는 게 싸고, eBook이 있으면 eBook으로 사는 게 싸다. 책을 읽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둘 때는 그렇다. 그렇지만 정가를 다 내고 사는데도 대형서점에서 책을 사는 맛이 다르다. 나는 이 커피가 저 커피고 맛을 못 가리지만, 사무실에서 카누 타 먹는 것보다 메가커피나 빽다방에서 2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마시는 맛이 더 좋고, 그보다 스타벅스나 폴바셋에서 마시는 맛이 더 좋다. 호사와 사치를 자기의 경제적 계급의 분수를 넘어 자주 부리면 곤란하지만, 어쩌다 부릴 수 있는 것은 좋다.


교보문고 기프트카드에 충전되어 있던 액수로 책 한 권 사고, 편의점 들려 먼저 라면 먹고 가도 되는지 여부를 체크하고, 컵라면 하나 먹고 집으로 향한다.


아기가 생긴 후에 집에서 내 개인적 용무인 글쓰기를 하기보다, 아기와 먼저 많은 시간을 보고, 혼자 아기 보느라 힘들었을 아내 마사지를 해주는 시간이 많아졌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돌아간다. 신촌에서 신도림 찍고 수원으로 향하는 길 합정에서 내려 교보문고 잠깐 들렀다 가는 정도의 방랑 또는 방황 정도는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허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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