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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24. 2021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

서시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
작은 우물 하나 있어
물 대신 사랑 흐르고
물고기 대신 희망 노닐고

나의 마음에 어느 숲에는
푸른 소나무 한 그루
향내 나는 솔잎 위에는
솔벌레 한 마리 꿈틀꿈틀

해님 아파 눕고
달님 눈물 흘려
그 어느 따스한 숨결
찾아 느낄 수 없던 날들

그 얼음바람의 다스림에도
나의 마음에 어느 하늘엔
반짝이는 별 하나 있었으니
나 그 별님 하나를 사랑했네




2015년 봄이었다충주의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에 갔다. 옹달샘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쓰시는 고도원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명상센터이다옹달샘의 건강치유 프로그램 <녹색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14년 가을 조울증이 재발하였다. 정신병원에 3개월 입원했 나오니 증상은 조절이 되었지만, 몸무게 5Kg가 늘고 눈빛은 총기를 잃었다. 나 홀로 지내는 낮에는 마루에 나와 TV를 보고, 부모님께서 계시는 밤에는 방에 틀어 박혀 인터넷을 하며,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다. 한창 청춘의 때에 그러고 있으니, 어머니 마음에 피눈물이 나셨을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큰고모 추천으로 나를 명상센터 옹달샘에 보내주셨다.


프로그램 자체는 좋았다. 다만, 혼이 나가 있던 내게 아무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쏘쏘 so-so, 그냥 그랬다. 프로그램보다, 쉬는 시간 친해진 참가자들과 옹달샘 뒷산을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았다. 집에서 혼자 지내다 오래간만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다함 씨, 혹시 외우는 시 있어요? 아니면 노래 한 곡 불러보던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외우는 시나 노래는 없고요. 오래전 지은 시가 있는데. 이 시로 만든 자작곡도 있는데. 그거 한 번 해 볼까요?"

"당연하죠. 좋아요."



저녁을 먹고 산행을 하다가, 어쩌다 나의 시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을 읊었고, 이 시로 만든 노래를 불렀다. 일행은 "브라보"를 외쳤다.


그날 밤 프로그램은 고도원 작가님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 명씩 돌아가며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되자 같이 산행을 했던 일행이 내가 지은 시와 노래가 좋다고 한 번 들어보자고 했다. 고도원 작가님도 좋다고 멍석을 깔아 주셨다. 무대 앞에 나가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을 때, 듣는 관중보다 무대에 선 내가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닫혀 있던 내 마음이 열렸고, 그 자리까지 오게 된 나의 사연을 나누었다.




1996년 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동아리 부회장이었고, 소녀는 회장이었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2000년 봄, 첫사랑 소녀를 향한 상사병은 군대에서 조울증이 되었다. 소녀가 내 마음을 떠나간 이후에도, 내 인생 하나의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상사병과 조울증으로 인생 너덜너덜 해진 남자에게 그 어떤 여자가 연민과 동정은 느낄지언정, 사랑에 빠질 리가 없었다. 나의 모든 사연과 상황을 알면서도, 자신이 나를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나와 결혼해준 아내 에미마를 빼고는 그랬다.


조울증으로 오랜 세월 방황하다, 2012년 여름 석박사도 아니고 영어교육과 학부를 13년 반 만에 졸업했다. 그 이듬해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14년 6월. '일신상의 사유'로 근무하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일신상의 사유'란 1학년 여선생님이 예뻤다. 고백 타이밍을 놓쳤고, 1학년 선생님이 나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백 한 번 해보지 않은 채 마음을 접었다. 1학년 선생님을 향한 나의 마음의 크기가 작아서는 아니었다. 안 되는 사랑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이후였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극단적인 생각이야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학년 여선생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에 더 이상 살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첫사랑 소녀로 시작한 숱한 사랑의 실패로 면역이 생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예쁘고 착한 여자는 많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 명씩 있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의 운명이 지나가면, 결코 자주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운명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운명이 나를 스쳐가는 것과, 내가 그 운명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1학년 여선생을 향한 마음은 바로 접혔다. 열일곱 살 때나 스물한 살 때나 그때는 그게 안 되었는데, 서른다섯 즈음되면 안 되던 게 된다. 다만, 다음날 학교에 출근하여 수업을 해야 하는데, 수업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고, 책상 위에 업무가 쌓여 있었다. 내게는 짝사랑으로 이미 무너진 일상과 멘탈을 일으켜 세울 손까딱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성격이 둥글고 둥글어 모질지 못한 탓에 삶과 죽음 사이의 강을 넘지 못했다.


그 주 남은 날을 병가를 내고 그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여, 눈썹 휘날리게 수업과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여름방학에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되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었다. 집에서 쉬며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 어차피 직장에 다니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약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조울증을 극복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에는 보통 약을 끊은 지 두세 달 정도 되면 조울증이 재발하여 강제 입원을 해야 할 지경이 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3개월 동안 조울증은 조절이 되었지만, 빛을 잃은 청년이 되었다. 그런 저런 사연으로 명상치유센터 옹달샘에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떠밀려 무대에 나가,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다.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분위기에 취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나누게 되었다. 조울증이 재발하여 꿈을 잃어버렸었는데,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고 즉흥적으로 선언을 했다. 참여자, 스태프, 그리고 고도원 작가님까지, 모두가 나를 환호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 최근 인기리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가 나를 추앙했다. 그날 밤 나는 어쩌다 얼떨결에 '옹달샘 시인'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아마도 사라졌을 옹달샘 만의 문화가 있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꼭 안아주었다. 사감포옹이라고 했다.


옹달샘 직원을 아침지기라 부른다. 그 밤 삶을 나누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쉬는 시간 아침지기 한 분이 나에게로 다가와 "다함 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내 머리가 착각을 한 것은 아닌데, 내 심장이 착각을 했나 보다. 봄에 피는 벚꽃이 어쩌다 가을에 만개하기도 한다는데, 혹독한 여름 태풍이 지나가고 초가을에 기온이 일시적으로 올라가면, 추운 겨울을 지나가고 봄이 왔다고 벚꽃이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학자들의 추측이다.


1학년 여선생님을 항하여 심장이 내 마음대로 뛰기 시작하여 내 인생이 고장이 나서 명상센터 옹달샘까지 흘러오게 되었는데, 명상센터 직원인 아침지기를 향하여 다시 내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당시 나에게 다가와 사감포옹을 했던 아침지기는 결혼 전이었고, 개인 사정을 알 수 없었으나 공식적으로는 남자친구가 없었으며, 옹달샘 아침지기 가운데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이미 여러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혼이 나가 있던 나는 여신 아프로디테가 빛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침지기가 프로그램 진행을 통하여 남녀노소 모든 참여자의 혼을 흔들고 있었는데, 나는 사실 그런 스태프가 있었는지, 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지, 인지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이 나가고 혼이 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지기가 나에게 다가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감포옹을 하며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의 혼은 다시 돌아와 눈을 떴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편의 시를 쓰고, 한 번은 시인이 된다. 나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있었다. 시를 써야지 시인이 되어야지 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은 시가 아니었다. 내 안에 시 하나가 고였고, 나는 다만 그 시 하나를 길러 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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