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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24. 2021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3대째 예수님을 믿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께서는 4형제의 막내셨다. 할아버지의 큰 형수님이신 큰 할머니의 전도로 결혼 전 총각 시절에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 나만 모태신앙이었던 것이 아니라, 7남매 장남이셨던 나의 아버지도 모태신앙이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도 못 가신 가난한 농사꾼이셨다. 평생 가정과 농사와 교회 밖에 모르고 사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가난한 농사꾼이셨지만, 7남매를 믿음으로 기르셨다. 7남매 중 다섯 명이 목사님과 사모님이 되었고, 선생님과 한의사가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주중에는 초등학교 선생님, 주일에는 교회 목사님이셨다.


아버지의 고등학교 시절 꿈은 목사님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안 된다.' 하셨다. 가난한 집의 7남매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빨리 취업을 하여 할아버지를 도와 동생들을 키우고 공부시켜야 했다. 아버지께서는 하룻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시고, 목사님의 꿈을 접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목사님이 되시는 대신,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셨다. 경력이 되는 동료 선생님들이 승진과 공부를 위해 야간제나 방학 때 계절제로 교육대학원을 다니실 때, 신학대학원을 야간에 나오셔서 목사님이 되셨다. 투잡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개척하신 교회에서는 일절 사례를 받지 않으시고 봉사하셨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학교 선생님을, 주일에는 교회 목사님을 하셨다.


우리 집에는 일반 가정집에 없는 기계가 두 대 있었다. 가정집에도 있는 프린터기가 아니라, 사무실에나 있을 법한 복사기가 있었다. 원본 테이프 하나를 동시에 다섯 개의 테이프에 고속 복사하는 테이프 고속복사기도 있었다. 복사기로 전도편지를 복사했고, 테이프 고속복사기로 전도편지와 함께 보낼 설교와 간증 테이프를 복사했다. 나는 집 거실 전축을 통해 항상 온 집을 흐르는 찬양 설교 간증을 들으며 자랐다. 우리 집 가훈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는데, 그 시절 나의 꿈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교회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성가대를 하고 중고등부 학생회장을 했다. 학교에서는 기독학생반과 찬양선교단 활동을 하며, 기독학생반 부회장을 했다. 길을 다닐 때 대중가요 대신 크리스천 뮤직 CCM을 부르고 다녔고, 학교에서 밥을 먹을 때는 눈 감고 기도하고 먹었고, 야간 자율학습 때는 성경을 꺼내 먼저 몇 장 읽고 기도한 후 공부를 시작하였다. 길에서 장애인이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할머니를 보면 먼저 다가가서 도와드렸고, 길에서 노숙자 부랑자를 만나면 호주머니를 털어 주었다. 학교에서는 왕따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를 존경한다는 어른도 있었고, 나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구별시킨 왕따로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의 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되겠다는 뜻도, 목사님은 안 되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목사 선교사 의사 교사 등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나의 꿈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자체가 꿈이었다.


주를 보는 것
주님을 아는 것
주를 섬기는 것
주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내 생의 아름다운 기도
이것이 내 생의 아름다운 꿈

김명식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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