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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r 31. 2022

내비 둬

출근길 전철이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주말에는 아들 요한이와 아내 에미마와 놀고, 출퇴근 길과 틈틈이 글을 쓰는 나는, 전철에서 브런치 앱을 열어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고 있었다. 평소 10시 출근 7시 퇴근이지만, 오늘은 다른 직원 퇴근 후 따로 할 일이 있어, 8시 퇴근이라 11시 출근하게 되었다.


"외국인이에요? 한국말 알아요?"


하얀 모자를 쓴 한 아주머니가 파란 모자를 쓰고 이어폰을 낀 한 청년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한다. 청년이 외국인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더더욱이 외국인에게 한국말 아냐고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묻는 것도 설고 신박했다.


아주머니의 요구사항은 청년에게 한쪽 팔을 펴지 말고 접어달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의 요구사항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것은, 전철에 빈자리가 많았고, 아주머니와 청년 사이에도 한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청년이 팔을 뻗은 것이 아주머니에게 직접적으로 아무 해를 끼치지 않았고, 주변에는 아주머니가 옮겨 앉을 빈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소란을 일으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와 청년의 싸움에서 청년 편이었다. 물론 직접 싸움에 참전한 것은 아니고, '다른 빈자리도 많은데.' 하며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나만 그런가 싶은데, 주변에 여론도 대게 나와 같은 듯했다.


반대 편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는, "자유인데 내비 둬." 하셨다. 청년의 자유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아주머니 한 사람에게만 거슬렸다.


청년이 바람직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빈자리에 팔 하나를 뻗은 것은, 승객이 많지 않아 빈자리가 많을 때 빈자리에 가방 올려두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일어나서 소란과 먼 곳 빈자리로 가서 앉았고, 몇몇 승객이 자리를 옮겼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전철의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는 팔을 뻗은 청년이 아니라 소란을 일으키는 아주머니가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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