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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01. 2022

[소설] 백수의 꿈

나의 대외적이고 공식적인 꿈은 브런치 작가였다. "였다" 라는 말은,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다. 2015년 6월 22일, 누구나 가입하고 글을 쓸 수 있지만, 작가로 승인이 되어야 글을 발행할 수 있는, 브런치가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날부터, 나는 바로 브런치 작가로서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나는 브런치 계의 얼리어답터였다.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며 브런치의 공식 입장은 "프로 작가가 아니어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플랫폼"을 표방했지만, 첫 작가로 사전 모집된 1000명의 기고가 중 999명은 날고 기는 글쟁이였다. 나머지 1명이, 프로 작가가 아니어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였다. 브런치가 시작하던 그날부터 나는 브런치 작가였으나, (돈이 안 되는) 브런치 작가였고, 나의 꿈은 (돈이 되는) 브런치 작가였다. 나의 대외적이고 공식적인 꿈이 (돈이 되는) 브런치 작가였다는 것이다.


사실, 나의 꿈은 백수였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백수로서 단 한 번도 백수를 탈출한 적이 없던 쭉 백수로 지낸, 아주 오래된 백수였다. 날 때부터 나의 꿈이 백수였던 것도 아니고, 꿈을 꾸기 시작한 청소년 시절부터 나는 커서 백수가 되어야지 했던 것도 아니었다. 살다 보니 인생유전으로 백수가 되었을 뿐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백수의 삶이 좋아졌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백수였다. 나의 꿈이 백수였다는 것은, 그때까지 나는 (돈이 안 되는) 백수였다면, 백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그때부터의 나의 꿈은 (돈이 되는) 백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찌어찌한 인생유전에 의하여,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고, 군대에 가지 않았고, 그 어떤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런 이력으로서 지금도 브런치 작가가 되기 어렵지만, 브런치가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그 1000명의 작가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백수 니트족을 대변하는 1명으로서 1000명 중 1명이었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브런치 이전에 나는 단 한 번도 온라인에 글을 쓰지 않았었다. 싸이월드에도, 네이버 다음 블로그에도, 티스토리에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단 한 개의 포스팅을 하지 않았었다. 텍스트를 대본으로 요즘 트렌드라는 유튜브도 하지 않았다. 글을 써야 한다면 편지지나 노트에 끄적였다. 물론, 그 편지지도 보낸 편지 보다, 보내지 못한 편지가 훨씬 많았다. 아니, 대부분의 편지는 보내지 못한 편지가 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언젠가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 이전에 나는 단 한 번도 글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을 쓴 적이 없었다. 브런치 이전에 내가 언젠가 글을 쓴다면, 온라인 공간에 디지털 퍼스트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 이전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던 것은, 아직 내가 글을 쓸만한 플랫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일이 아니었다. 백수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로서 사는 그 자체였다. 집 마루를 북카페처럼 꾸며 놓고, 윤종신의 음악을 들으며, 카누 아메리카노 커피를 타 옆에 놓고,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직업이 없는 삶을 세상이 용납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는 돈을 벌지 않는 삶을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꿈은 브런치 작가였다. 그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내가 속으로 사는 삶은 백수의 삶이나, 나의 삶이 겉으로 보이는 것은 작가의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수가 꿈이란 것은, 사실 꿈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꿈을 잃었다. 꿈을 잃고 보니, 꿈이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나, 세상은 꿈이 없는 삶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이 없는 것이 꿈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는 백수를, 겉으로는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실은, 나만 아는 비밀이라면, 나는 어느 순간 꿈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꿈을 꿀 의지를 상실했다. 꿈이 있어야 하나, 그냥 살면 돼지, 하는 결론에 이르렀으나, 세상은 야망이 없는 소년과 꿈이 없는 청년을 용납하지 않기에, 그냥 속으로는 백수의 꿈을 겉으로는 작가의 꿈을 꾸기로 했다.


나도 처음부터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고 싶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나의 미래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찌저찌한 인생유전을 겪으며 흘러오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꿈을 잃고 이렇게 주저 않고 말았다. 꿈꾸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이, 나에게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였다.


사실 내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백수로 살아가는 것으로, 언젠가 돈을 벌면 좋고 아니면 말고인 삶에 대한, 그런 사연을 이야기할 수 필요는 없다. 그냥, 어느 날 나는 상징적인 의미로 일종의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정신의 팔다리를 잃고 주저앉은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삶에 나는 더 이상 불만이 없고, 지금 이 삶에 만족하고 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여기까지 이렇게 온 인생유전의 이야기를 까게 되는 까닭은, 사실 꿈을 꾸지 않고 그냥 백수로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나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없는, 내가 원하지 않고 정하지 않은 그런 삶의 변화가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집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들으며, 카누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 서핑이나 하면서, 브런치에 글이나 쓰는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생유전의 마지막 골목에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했으나, 브런치에서 영원히 로그아웃 하고, 내 평생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절필을 하게 된 상황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인생유전의 끝에서 내가 원하지 않게 사회로부터 자연인 자유인이 되었다. 그러나, 또 내가 자연인으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원했을 때, 나는 원하지 않게 사회의 노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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