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May 23. 2022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함께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


주일이었다. 오전에 작은 교회를 갔다가, 오후에 큰 교회를 갔다. 작은 교회와 큰 교회 사이 양다리를 걸친 것은 아니다. 동네 작은 교회는 아버지께서 개척하셔서 고모부께서 담임목사님이신 가족 같은 교회다. 큰 교회는 네팔어 예배가 있어 네팔인 아내 에미마가 네팔인 동포를 만나고 네팔어로 예배를 드리라고 다닌다. 차가 없어서 아들 요한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아내는 못 가고, 나 혼자서라도 가려고 한다. 팔달구에 있는 큰 교회는 그 자리에 새 성전을 짓기 시작해서, 큰 교회가 광교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광교로 예배처소를 옮긴 이후 내가 처음 가는 날이었다.


네팔어 예배를 마치고 광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버스 정류장에 내려 걸어왔다. 동네 가까이 들어서니 시의원 후보 사무실이 있었고, 그 앞에 우리 아파트 윗집 할머니께서 계셨다.


"가 말고 나 찍어. 우리 동네 사람이야."


윗집 할머니랑 나랑 지지정당은 같은데, 나는 시의원 선거에 가 나 후보가 있는 게 같은 당이라도 가 나 중 한 사람만 찍어야 하는지 시의원 선거 시스템 자체를 몰랐고, 가 나 후보 둘 다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 후보가 우리 동네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 아파트에 살거나 이해관계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고, 홍보 전단으로 본 가 나 후보 인상과 프로필 중 나 후보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우리 동네 사람이라니, 나 후보에게 표를 주기로 했다.


윗집 할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동네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꺾어졌다. 아들 요한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마실 나오는 아내 에미마와 우연히 마주쳤다. 안 그래도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아들과 함께 공원에 나오려고 했다. 내 폰이 방전되어 아내와 통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오빠는 집에 들어가 쉬어. 나 혼자 요한이랑 갔다 올 거야."


아내가 밀고 있는 요한이 유모차를 대신 붙잡으려는 나의 손길을 아내가 뿌리쳤다. 아내가 나에게 삐쳐있다. 나는 여자가 왜 삐치는지 그 이유를 모를 뿐 아니라, 안다 해도 어떻게 그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지 모른다. 결혼 전에는 여자의 마음이 이렇게 알쏭달쏭한 줄은 몰랐다.


아내는 내가 요한이의 유모차를 끌지도 못하게 하고 자기가 끌고 간다. 고집 없는 사람이 고집을 부릴 때는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또 고집 없는 여자가 고집을 부리는 대상은 남편 하나뿐이기도 하다. "집에 가서 쉬어."라는 말에 진짜 집에 가서 쉬면 안 된다. 아무 말하지 않고 아내와 요한이 옆을 따라갔다. 아내가 내가 따라오는 것까지 못 따라오게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다니는 공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호수를 낀 집 앞 공원과 운동장과 도서관과 낮은 동산을 낀 집 뒤 공원이 있다. 집 뒤 공원에 갈 때는 우리 집에서 다른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 간다. 꼭 그렇게 가야 하는 것도, 그 길이 가장 빠른 것도 아니지만, 아내는 그 경로를 좋아한다.


먼저 공원에 가는 줄 알았는데 카페로 향한다. 나는 처음 보는 카페다. 턱이 있는 문 앞에서 요한이 유모차를 붙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아내도 그 카페에 전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나 보다. 보통 내가 있어야 아내도 밖에 나가는데, 요즘에는 날도 따듯하니 나 회사 갈 때는 요한이 산책시키려 밖에 나간다. 유모차로 턱을 넘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유모차 앞발을 들면 된다. 앞발을 들고 뒷발로 이동하기 때문에, 올라갈 때는 뒤로 뒷걸음질을 해야 하고, 내려갈 때는 앞으로 가면 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유용한 테크닉이다.


아내는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마시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요한이는 집에서 가지고 온 아기용 과자 떡벙을 먹었다. 카페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집 뒤 공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내가 요한이 유모차를 끌고, 아내가 말없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내가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아내가 운동 기구 앞에 요한이 유모차를 세워두고 운동 기구를 탔다. 나는 아내와 요한이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춤추듯 운동을 했다. 아내가 말없이 웃으며 나와 아들을 틱톡에 담았다.


집에 와서 요한이 분유를 먹이고, 졸려서 짜증 난 요한이를 내가 재웠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마루에 흩어진 요한이 장난감을 정리하고, 요리하는 아내 곁에서 돕는 척을 하며 밥을 펐다. 요한이가 자는 사이 둘이서 말없이 밥을 먹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아내는 뒷정리를 했다.


"오빠, 이리 와 춤춰."



저녁 식사 정리를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하는데, 아내가 춤추는 틱톡 하자고 부른다. 아내의 마음이 풀렸다. 아내의 틱톡은 단지 재미로 하는 것만은 아니고, 경제활동이기도 하다. 아내와 내가 틱톡을 해서 지금까지 현금화시킨 돈이 60만 원 정도 된다. 나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하는데, 먼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내와 춤추는 틱톡을 했다.


댄스 틱톡을 찍고, 평일 내내 요한이를 보는 아내가 모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요한이를 방으로 데리고 가 같이 시간을 보냈다. 아들 옆에 두고 글을 쓰거나 딴짓을 하면 아들 요한이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귀로 들으며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회사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집에서는 아내와 아들과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는 우울해지고, 아들은 칭얼 댄다. 우선순위의 문제다. 글은 천상 출퇴근 길 전철에서 써야 한다. 넷플릭스를 보고, 밀리의 서재를 보는 것은, 출퇴근 길에서 끝내야 한다.


그렇게 아내와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결국 에세이스트로서 나의 글의 글감으로 돌아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요일 회사 안 가는 날의 일상다반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