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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by 최다함

나의 이름은 최다함이다. "최선을 다하라", "다윗과 아브라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세 가지 뜻으로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름을 지어주셨다. 할아버지께서 결혼 전부터 교회를 다니셔서, 3남 4녀 7남매의 장남이신 나의 아버지도 모태신앙이셨던, 3대째 예수 믿는 집에서 태어났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당연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거리를 다닐 때도 가요 대신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다녔다. 교회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가대를 했고,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회장을 했다. 학교에서는 기독학생반 부회장을 했다. 동네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다 버렸고, 동냥하는 홈리스가 있으면 주머니를 털어서 주었다. 나는 교회 다니는 착한 어린이 청소년이었다. 착한 아버지 어머니로 받은 DNA로 착한 이미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내가 아는 비밀은 지금 나는 그다지 착하지 않다. 그저, 나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고, 나쁘게 살아서 얻을 유익도 없고, 나쁘게 살려고 해도 사람들은 나에게 착함을 기대한다. 더 이상 착하지 않고, 생긴 게 착할 뿐이지만, 이제는 아주 오래전 그때는 착했다.


나의 학교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은 내가 목사님이 될 줄 알았다. 목사님이 되지 않으려고 했었던 것도 아니지만, 목사님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나의 꿈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자체였다. 굳이 나의 꿈이 있었다면, 당시 독실한 크리스천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서 '하나님의 대학'이라 불리던 포항의 한동대에 가는 것이었다. 한동대는 전공 선택 없이 입학해서 1학년을 마치고 전공 선택을 했기 때문에, 굳이 진로를 미리 정해 둘 필요는 없었다. 한동대 졸업 후 신학대학원에 가서 목사님 될 수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재수를 하고, 한동대에 두 번 도전했지만, 재수하면서 수능 성적을 상당히 올렸는데도 아쉽게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에 갔다. 영어교육과에 지원했던 것은,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듣기 한 문제 틀리고 다 맞아서 내가 영어에 적성이 있나 착각을 했기도 했지만, 영어교육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 가서 영어 선생님 하면서 목사님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 아버지 생각이었고, 한동대 진학 외에 딱히 다른 길을 정해두지 않았던 나는, 아버지 생각이 나쁘지 않았다.


재수하기 전 고3 때 한동대는 떨어졌지만, 사실 총신대 영어교육과에는 붙었었다. 그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총신대에 갔고, 순리대로 따라갔었더라면 인생이 굽어져 전혀 예상치 않은 길로 빠지지 않고, 예측 가능한 곧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큰 교회 목사님의 사위가 되어, 큰 목사님 딸과 미국에서 박사를 하고 와서, 주중에는 기독교 사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교목을 하면서, 큰 교회 목사로 커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회와 미련은 한 터럭도 없는데, 마흔셋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 외에 이렇게 불확실하게, 아직도 내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내가 바라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 사랑'이 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사춘기 호르몬 변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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