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동아리 임원 활동으로 학교에서 쉬는 시간 매일 같이 만나는 게 일상이었던 것은 고2 딱 1년 동안이었다. 고3이 되고 나서는 입시로 동아리 활동이 끝났고, 그때는 남녀공학이라도 남녀각반이었기 때문에, 만날 일이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길에서 한 번 우연히 마주친 것 외에는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동아리 임원 활동을 함께한 1년 외에는 사실상 친구로서의 인연조차 끊겼지만, 내 마음에서 소녀를 떠나보내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소녀야 동아리 활동이 있을 때야 나를 만났고, 어쩌다 한 번 내 생각이 났겠지만, 나는 7년 동안 순간순간 항상 소녀를 생각했고,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줄을 놓쳤고 조울증에 걸렸다.
소녀가 내 마음을 떠나간 이후에도 평생의 하나의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했다. 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리고 인생이 너덜너덜해진 남자를 어떤 여자도 동정은 할지언정 사랑할 리가 없었다. 나의 모든 사연과 상황을 알면서도 자신이 나를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하시고 일으키시리라 믿고 나를 사랑하고 나랑 결혼한 아내 에미마를 빼고 말이다.
사랑은 아니었지만 친하게 지냈던 여자사람 친구도 몇 있었다. 같은 과 같은 학번 동기 중 연상의 누나가 있었다. 우리들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조울증이 발병하고 엄마 같은 누나에게 사랑을 느껴 잠시 질척대던 때도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나면 이메일을 보내면, 하루 이틀 안에 답장이 왔고, 그렇게 어쩌다 한 번씩 안부를 주고받았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지만, 잘 지내겠지 하며 더 이상은 이메일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오랜 조울증으로 남아있는 인연도 없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정리가 되는 인간관계도 적지 않다. 나쁘게 끝이난 게 아니더라도, 예전에는 아는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니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조울증으로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놓쳐버린 나는, 건강해진 지금 끊어진 옛 인연들을 되살리기보다, 지금부터 새로운 인간관계 인연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던 것으로 기억하는 여사친이 있었다. 그이는 79년생 98학번이었고, 나는 80년생 99학번인데, 재수를 한 나보다 1학년 위였지만 나는 초중고를 79년들과 다녔기에, 나는 그이를 친구 먹으려 했고 그이는 나를 동생 삼으려 하는 기싸움을 했다. 사귀는 사이도 썸 타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했다. 그이는 기독교 선교단체 예수전도단 소속이었는데, 캠퍼스에서 신입생인 나에게 전도를 하다가 나랑 친하게 되었지 싶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되어 버린 그런 사이였다. 그이는 예수전도단이었지만, 내가 예수전도단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활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버지에 이끌려 다른 선교단체 CCC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그이는 목사님 딸이었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동생이 있는 간호학과 학생이었고, 나는 목사님 아들이었고 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 대한 연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이는 여친도 아니었는데 나의 어머니랑도 단둘이 만나기도 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께서는 그이가 며느리가 되시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가까이 지냈지만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았는지, 그러기에 남매처럼 너무 가까이 지냈는지, 남녀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그이가 살짝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할 찰나 그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선교단체에서 만난 둘은 목사님과 사모님이 되어 해외 선교지에 선교사로 있다. 결혼식날 가기로 했는데 축의금을 가지고 결혼식장에 가다 다른 곳으로 새서 그 돈을 다 써 버리고 가지 않았다. 그 이후 핸드폰과 폰 번호를 바꾸면서 연락처를 잃어버렸고 연락이 끊겼다.
날이면 날마다는 아니지만, 사랑이 지나가면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운명이 지나가면 다른 운명이 찾아온다. 나를 스쳐가는 사랑과 운명과 인연을 내가 붙잡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